내가 노마드 유목민 목회를 하게 된 배경에는 나의 유목민적 의식과 삶의 스타일이 깊은 연관이 있다. 적어도 나는 대학시절부터 여행자를 꿈꾸며 살았다. 1990년 군목을 전역하자마자 바로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당시만 해도 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이었다. 여행의 개념도 정보도 없던 시절이다. 인터넷 같은 정보화 시절도 아니었음으로 나는 일본에서 나온 여행 번역서 한 권만을 들고 유럽으로 떠났다. 정확히 한 달간의 유럽 배낭여행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다. 나는 여행자로서의 삶이 갖는 의미를 배웠고 그 후 유목민 목회를 선택했다.
여행자로서의 내 목표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도 나는 언제나 자유를 꿈꾸었다. 그래서 대학시절 내 책상 벽면에는 자유인으로 사는 삶에 대한 동경을 담은 글들로 가득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석에 쓰여진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자유다’라는 글귀를 가슴에 새기고 그의 책 ‘그리스인 조르바’를 몇 번이나 읽기도 했다.
요즘에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방송을 하루에 한두 편씩 찾아서 보고 있다. 자연 속에서 원시적 삶이지만 조금도 부족함 없이 행복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싶어서다. 산속에서 약초를 캐고 계곡에서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자유인으로 사는 이들을 보면 부럽고 그런 삶이 그립기도 하다. 내안에 숨겨진 어떤 원초적 욕망 때문일 게다. 그래서 나는 노마드 유목민을 좋아하고 유목적 삶을 즐기고 싶다. 코로나 때문에 몽골에 가지 못한 지 2년이 넘었다. 당장이라도 몽골의 끝없는 초원을 달리고 싶다. 고비사막의 한복판에서 보았던 일몰과 일출의 잊을 수 없는 날들을 다시 경험하고 싶다. 크레타 섬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에 찾아가 그의 비문을 손으로 만져보며 그가 꿈꾸던 자유를 느끼고 싶다.
정말 이제라도 여행자로 살고 싶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는 것에 주저하지 않도록 내 삶과 마음을 비우고 싶다.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작은 짐 하나만으로도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지금 나는 너무 무겁고 복잡한 삶을 살고 있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을 정도로 깊숙한 늪에 빠진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자유는커녕 일에 노예가 되어 숨 한 번 제대로 쉴 수 없는 답답한 인생을 살아간다. 이렇게 살다가 어느 날 맥없이 떠난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 나는 요즘 매일 자유를 꿈꾸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우울증일까? 아니면 떠나온 지 오래된 고향을 그리는 나그네가 되어서일까?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피레오스 항구에서 배를 기다리는 조르바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자유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가르쳐 주던 카잔차키스의 마음이 느껴지는 날이다. 나도 조르바가 되고 싶다. 정말 자유인으로 살고 싶다. 이제라도 여행자로 살고 싶다.
유해근 목사
<(사)나섬공동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