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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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에는 책상 위에 꽃병이 있을 때가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약병이 늘어나는 현실이다. 따라서 한 달에 한 번씩은 안과에 가서 백내장을 예방하는 약을, 가정의학병원에서는 혈압약을 처방받아 먹는 일이 어길 수 없는 일상생활이 되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전립선에 문제가 있는 느낌이 들어, 평소에 다니던 의사에게 처방을 받아 복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아무래도 전문의에게 진찰을 받는 것이 좋다는 의견에 따라, 집에서 가까운 고대구로병원 비뇨기과에서 진찰을 받았다.  우선 혈액으로 알아보는 혈청 전립선 특이항원검사(PSA)를 받기로 했고, 바로 그 결과는 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에 입원해서 CT·MRI촬영, 본스캔(BORNSCAN) 그리고 전립선 조직검사를 시행해 진행사항을 알아보기로 했다. 일단은 집으로 왔지만 마음이 착잡한 것이 사실이었다. 사실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이라고 여겨졌던 암이 내게도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왜 나에게(Why Me)’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이런 병은 누구라도 걸릴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며, 더욱이 이는 내가 무슨 큰 죄를 졌기에 받는 징벌은 아니라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떠올렸다. 곧 하나님께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온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리고 이제는 좀더 겸손한 마음으로 내게 주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서약하면서 의사의 치료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모든 치료에 충실하게 임할 것을 다짐했다. 그러면서 덧붙여 예전과 같이 항상 감사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웃음을 잃지 않고 명랑하게 매일의 생활을 계속할 것을 다짐했다. 만나는 사람에게는 예전과 같이 변함없는 활달한 생활 자세를 보여주기로 마음을 굳게 먹으면서 규칙적이며, 절제된 생활을 이어가기로 했다.

다행히 의사는 수술을 권하지 않지만 주사와 약을 통한 치료를 계속하자고 했고 나는 무조건 의사의 치료방법에 따르기로 했다. 이 병원은 나의 집에서 평상적인 걸음으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기에 운동하는 마음으로 재래시장을 통해 병원에 다녔다. 시장은 역시 많은 사람으로 복잡하고 조금은 지저분했다. 그 좁은 길로 자전거와 짐수레가 다니는 것은 이해하지만 때로는 오토바이도 비비고 들어오며, 어쩌다가 자동차도 끼어들 때가 있었다. 이렇게 조금은 몰염치한 행동에도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태도를 보여주는 넉넉함이 있었다. 더욱이 그곳에는 장사하는 상인들의 인성이 돋보이기도 했다. 마치 이곳이 운명적으로 장사를 해야 하는 곳인 듯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수많은 장사꾼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일확천금을 꿈꾸지도 않고 여기에서 열심히 장사함으로 화목한 가정을 꾸리면서 자녀들을 키우는 보람을 느끼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남들보다 조금은 어려운 처지에 있더라도 이렇게 사는 것이라도 감사하다고 여기면서 충실한 오늘을 보내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평온한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 재래시장을 지나면서 그들과는 조금 다르게 살고 있는 스스로를 슬그머니 비교해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크게 겪었던 역경이 없이 비교적 편안하게 지내왔고, 또한 매일의 생활을 꾸려나가는 일에 커다란 어려움이 없고, 가족과 함께 교회의 울타리에서 잘 지낼 수 있으니, 이만하면 나는 누구 부럽지 않게 살만한 세상에 있음이 고마울 뿐이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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