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 띠는 수학의 기하학과 물리학의 역학이 관련된 곡면으로, 경계가 하나밖에 없는 2차원 도형이다. 즉, 안과 밖의 구별이 없다. 이 띠는 1858년에 뫼비우스(August Ferdinand Möbius)와 요한 베네딕트 리스팅(Johann Benedict Listing)이 서로 독립적으로 발견했다. 종이를 길게 잘라서 띠를 만든 후 종이 띠의 양 끝을 그냥 풀로 붙이면 도넛 모양의 토러스가 되는데, 비틀어서 붙이면 뫼비우스 띠가 된다. 뫼비우스 띠는 원상태로 돌아가 힘의 평형 상태를 유지하는 독특한 형태의 비튼 부분이 있다.
뫼비우스 띠는 앞과 뒤가 구별되지 않는다는 특성 때문에 산업 현장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굿리치사(B. F. Goodrich Co.)는 뫼비우스 띠로 컨베이어 벨트를 만들어 특허를 냈다. 이 벨트는 오늘날에도 재래식 방앗간이나 원동기 등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벨트가 꼬여있기 때문에 양면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1928년 포레스트(Lee Forest)는 양면에 모두 녹음이 되는 뫼비우스 필름을 발명했다, 하리(O. H. Harris)는 연마용 뫼비우스 벨트를 발명했으며, 1963년 제이콥(J. W. Jacob)은 드라이크리닝을 하는 세탁기계에서 사용되는 셀프크리닝 뫼비우스 필터 벨트와, 첨단과학에서는 데이비스(Richard L. Davis)가 원자력에 이용되는 저항기용 뫼비우스 띠를 발명했다. 네덜란드의 판화가 에셔(M. C. Escher, 1898)는 뫼비우스 띠를 이용해 작품을 남겼다.
생각을 비틀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다. 비틀지 못한 경직된 사고를 확증 편향이라고 한다. 확증편향적인 사람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해 버린다. “기존의 사실들을 무시한다고 해서 그것들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는 헉슬리(Aldous Huxley). 워런 버핏(Warren Buffet)은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것은 기존의 견해들이 온전하게 유지되도록 새로운 정보를 걸러내는 일이다”고 말했다. “확증 편향은 강력하고 침투력이 좋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편향이 개인, 집단 또는 국가 차원에서 발생하는 온갖 마찰과 논쟁과 오해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심리학자 니커슨(Raymond S. Nickerson)은 주장했다.
생각을 비튼다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한다는 뜻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다른 사람의 처지(處地)에서 생각을 한다는 사자성어로, 맹자(孟子)는 안회(顔回)도 태평성대에 살았다면 우(禹) 임금이나 후직(后稷)처럼 행동했을 것이며, 우(禹) 임금과 후직(后稷)도 난세(亂世)에 살았다면 안회(顔回)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처지(處地)가 바뀌면 모두 그러했을 것”이라는 뜻의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말을 남겼다. 경계를 허무는 에너지는 사랑에서 나온다. 사랑 때문에 우리는 생각을 비틀기 시작한다. 맺힌 것이 풀리고 온전하게 되는 것이 사랑이라고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말하고 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3-14)
그러나 작금의 우리네 정치판을 바라보면 이념(理念)에 물든 사람은 치료하기 어렵다는 명의 화타(華) 어록이 생각난다. 생각을 비틀고 보면 뫼비우스 띠처럼 경계가 사라지는데, 생각을 비틀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뒤 돌아보면 다른 세상이 보이는데…
고영표 장로 (의정부영락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