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한국교회] 모로코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

Google+ LinkedIn Katalk +

선교적 접근을 위한 모로코 수니파에 대한 이해

북아프리카에서 이집트가 먼저 639년부터 이슬람이 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수단 방향으로 퍼져 나가 나중에 북부 리비아와 튀니지로 800년부터 1250년 사이에 이슬람교도는 북아프리카 전역과 사하라를 넘어 동부 아프리카 해안 지대 전체와 마다가스카르 고지대까지 퍼져나갔다. 이슬람 종교가 아프리카에 출현하게 된 것은 아랍군대가 이집트를 침공해 비잔틴 제국의 군대를 격파한 639년이다. 이슬람이 아랍 이외의 많은 종족을 흡수해 세계적인 종교로 발돋음한 것은 8세기 초 문자화한 언어로 아랍어가 출현하면서부터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8-9세기 동안 이슬람의 개종은 점진적이었다. 

아프리카의 이슬람화에는 상인과 유목민의 힘이 영향을 미쳤다. 동아프리카에 비해 서부 아프리카는 활발한 교류로 인해 급속한 이슬람 사회가 형성되었다. 그 가운데 사하라 지역은 10~11세기부터 모슬렘화가 지속되기 시작해 사하라 횡단 노예교역로를 통해 11세기에는 아프리카 전 지역에 이슬람이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교역로를 통해 아프리카인은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면서 이슬람의 종교를 받아들이게 된다. 메카 성지의 순례 여행은 아프리카인들에게 이슬람 중심에서 벌어지는 발전상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다. 

메카에서 온 압드알라에 의해 아프리카 이슬람 종교가 개혁되며 강화되었다. 7세기 말에 아랍군대가 모로코를 침략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슬람의 공동체를 형성했다. 아랍의 침략과 함께 북아프리카의 이슬람화에 대해 말하길 북아프리카를 정복해 식민지로 삼을 당시에, 이슬람 제국은 기독교인들에게 탄압정책을 써서 무슬림화 시키려고 강압했다. 공물 강요에 이어 기독교인들을 2급 시민으로 낙인찍고 1급 시민이 무슬림들을 상전으로 받들게 강요했다. 토지세, 인두세, 징용 등 죽음의 압력으로 이슬람화의 작업을 전개해 나갔다. 아랍문화, 아랍식의 이름, 아랍어, 아랍식의 옷차림, 아랍식의 사회제도, 아랍식의 건축 양식 등을 강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북아프리카 교회는 완전히 힘을 상실하고, 북아프리카 원주민들도 아랍화 되었다. 

수니파 이슬람교도는 자신들의 교파를 이슬람의 주류이자 정통파로 간주함으로써 소수파, 즉 시아파와 구별한다. 수니파는 처음 4명의 칼리프를 마호메트의 합법적 후계자로 인정하는 반면 시아파 교도는 마호메트의 사위였던 알리와 그 후손에게만 이슬람에 대한 지도권이 속한다고 믿는다. 한편 시아파와는 대조적으로 수니파는 마호메트에 의해 건립된 신정국가를 세속의 통치영역으로 오랫동안 이해해왔기 때문에, 이슬람의 지도권에 대해서도 신의 질서나 영감이 아닌 당시 이슬람 세계의 지배적인 정치 현실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입장 때문에 수니파는 역사적으로 메카의 지배 가문을 인정했으며, 종교적 관행을 보장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경우라면 어떠한 칼리프의 통치라도 용인했고 외국인 칼리프의 지배까지 수용했다. 모로코의 이슬람교가 수니파이지만, 모로코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기독교 선교적 접근과 전도 방안을 위해 그 특성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소기천 박사

<장신대 성서신약학 교수>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