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장편소설] 춘원의 파란만장한 58년 인생 스토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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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사 최초의 현대 장편소설이자 순 한글로 쓰인 ‘무정’은 첫회는 11면에 실렸으나 2회부터는 1면에 개재됐고 열광적인 인기를 끌자, 유학생이던 이광수의 원고료를 두 배로 올렸다. 연재가 끝난 후엔 이광수를 남쪽 지역에 특파원으로 파견, ‘5도답파기’를 쓰게 했다.

또한 그해 11월에 또 다른 장편소설을 청탁해 ‘개척자’를 연재하게 했다. 1908년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 설립한 출판사 ‘신문관(新文館)’에서 1917년에 ‘개척자’를 단행본으로 출간해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으며 일제 강점기에만 8만에 걸쳐 인쇄되었다.

‘무정’으로 전 조선 여성의 연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 희대의 천재는 1915년 여름 국내 첫 서양화가 미모의 ‘나혜석’을 만나 교제하기 시작했다. 고향에 조강지처를 두고 신여성과 연애하는 풍조가 유행했기 때문이다. 이 무렵 소설 ‘무정’을 집필하며 결핵이 재발된 가장 어려울 때에 허영숙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허영숙은 경성 부잣집 직물상집 딸로 도쿄 여자의학전문학교 재학 중 이광수를 만났다. 허영숙이 1년 먼저 귀국하는 등 이별한 것은 아닐까 싶었지만,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이광수와 함께 베이징으로 석 달 가량 사랑의 도피여행을 떠났고, 결국 춘원은 1921년 본처와 합의 이혼한다.

이 시기 전통적 가부장 제도를 비판하고 자유로운 결혼생활 등을 주장한 ‘신생활론’ ‘자녀중심론’ 등을 발표하지만, 춘원은 자신이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문제아로 화제가 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문제아의 내용은 무척 다양했다. 이광수가 젊은 여자와 산다는 것이라든지,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만 글을 싣는다라든지, 그리고 비밀리에 이광수가 일본 공사관에 출입한다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춘원은 1919년 이 모든 루머를 뒤로 하고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유학생의 ‘조선청년독립단’에 가담해 ‘2.8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뒤 이를 외국으로 보내는 사명을 띠고 1919년 2월 5일 상하이로 탈출해 ‘신한청년단’에 가입하는 등 독립운동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상하이에서의 독립운동 속사정을 춘원의 눈엔, 근대화된 문명국인 일본을 이길 수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 이때부터 춘원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의 조바심은 연인 허영숙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솔직히 드러난다. 춘원의 고심은 점점 깊어만 간다. 이 무렵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의 편집국장을 하던 그는 상하이에 남든가, 미국행을 택하라는 스승 도산 안창호 선생의 충고를 거스르고 춘원은 그해 3월 돌연 허영숙과 함께 귀국해 5월에 전격 결혼한다.

9월에는 ‘사이트’ 총독과 면담하는 등 세속적인 출세 가도의 길로 성큼 들어선다. 1922년 그는 ‘종하원’ 교사로 초빙돼 철학과 논리학을, 경성학교와 경신학교에서는 영어를 가르쳤으며 이듬해엔 그의 <민족개조론>을 발표해 조선청년들을 분노케 한다.

<민족개조론>의 요지는 거짓말 추방, 공론 추방, 신의, 개혁 의지, 공사 구분, 전문기술개발, 경제적 독립, 위생과 건강 등 8개항으로 명분있는 내용으로 조선민족에 대한 전면적 개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이 내용은 일제의 무단정치에 순응해야 한다는 의미로 많은 조선 청년들의 오해를 사서 그들을 분노케 했다.

춘원은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했으나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그의 ‘민족적 경륜’의 내용이 거센 비판을 받았는데, 이는 식민지 통치에 합법적인 범위내에서 정치, 산업, 교육운동을 제창한 내용이니 식민통치를 긍정하는 ‘개량주의’라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불매운동이 일어나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춘원은 1926년 11월 다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이 됐고 부인 허영숙이 여성기자 제1호로 동아일보에 입사하기도 했다. 이때 춘원은 동아일보에 ‘마의태자’ ‘단종애사’를 연속 연재하고, 라이벌인 조선일보에는 홍명희의 ‘임꺽정’이 연재되고 있었다.

또 춘원은 1933년에는 조선일보 부사장에 취임해 1934년 5월까지 활동했다. 그런 후 춘원은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반년 만에 병보석으로 나와 법원에 사상전향서를 제출하고 무죄판결을 받아낸다.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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