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질로 고생하며 보이지 않는 눈을 대신해 누군가와의 동행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을 바울은 그런 한계와 장애도 아랑곳하지 않고 떠나고 또 떠나는 삶으로 자신의 삶을 규정했다. 그는 떠남의 영성을 보여주었다. 떠날 줄 아는 자만이 자유롭다.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말이다. 이처럼 인간은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 그런 자만이 성공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바울은 죽는 날까지 사역자로 남았다. 은퇴하고 집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나아가 로마에까지 스스로 찾아가 순교의 자리에 섰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서머나 교회에 남긴 사도요한의 권고에 그대로 순종한 것이다. 은퇴의 시간 앞에서 나는 어떤 결단을 하여야 하는가?
죽는 날까지 선교적 삶을 살았던 바울에게서 나는 장애와 관계없이 살았던 한 인간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그는 안질이라는 고통 앞에서 절망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선교하려는 의존적 삶을 살지도 않았다. 스스로 텐트를 만들며 선교했다. 바울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나는 다시 나섬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한다. 그는 자유인이었다. 예수처럼 그는 자유인으로 살아가겠다는 철학과 꿈을 이룬 사람이다. 조금도 구질구질하지 않았던 바울이다. 어느 누구 앞에서도 당당했으며 하물며 로마황제에게 자신을 데려다 달라는 황당한 주장도 서슴지 않았던 사람이다. 끝까지 간다는 의지는 말로만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처럼 십자가 꼭대기까지이며 바울처럼 로마에서 죽는 날까지다.
어젯밤에는 밤새 비가 내렸다.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거리는 밤이었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은 오지 않았고 나는 현실과 미래를 오가며 수많은 생각을 했다. 자유를 선택했다면 외로움과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구질구질하지 않은 삶을 원한다면 고통을 친구로 여겨야 한다. 그리고 눈이 안 보이는 것이 특별한 은총임을 알아야 한다. 밤새 그런 생각을 했지만 아침이 되니 다시 화가 난다. 또 하루의 고통이다. 나는 바울처럼 살 수 없는 것일까?
유해근 목사
<(사)나섬공동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