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믿음으로 한국 땅에 뛰어든 배위량 목사 (137) 배위량 순례단의 역사(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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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위에서 언급된 일들을 무수히 시행하면서 많은 친절과 공감과 함께 무수한 거절과 냉대도 함께 받았다는 사실이다. 위에서 언급된 모든 기관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배위량 사역을, 타자의 힘을 빌려, 필자의 경제적인 이익을 위하고, 개인적인 연구를 통하여 명예를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 분들은 배위량순례단연합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되고, 무슨 교회와 무슨 학교와 무슨 노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분들 중에서 어떤 분은 교단에서 여러모로 많은 역할을 하는 분이기에 정치의 판도를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심정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의심할 수도 있고 그렇게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면은 맞는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주장하는 분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한 단면을 크게 너무 부각하고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과연 누가 이런 일을 지속적으로 할 마음을 가질지, 시간을 내고 돈을 들여 이런 일을 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우리는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 배위량 순례길을 찾았고 그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찾지 않으면 곧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가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되고, 그러면 멀어지게 된다. 그래서 가야하는데, 갈 사람이 있을 때도 있지만,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갈 사람을 찾고 구하고 같이 가자고 부탁한다. 그래서 오는 사람이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노정을 혼자 걷는다. 요즘음 사람들은 먹고 살기에 벅차고 다 바쁘다. 같이 걸을 때도 혼자 걸을 때도 다 감사하다. 눈물이 날 것 같이 벅차다. 그런데,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온다. 

관심이 있어 오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못 오다가 필자의 간절함에 마음이 감동되었든지, 아니면 배위량에 대한 관심이 있었든지, 아니면 걷는 것이 건강에 좋고 걷기 열풍이 불고 있어 건강을 위해 왔든지,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한 가지 이상의 목표를 가지고 참석한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아래와 같은 현지의 사정을 알고 실망한다.

1. 와보니, 불편하고 힘이 든다. 

2. 거대한 프로젝트라도 준비되었을 것 같아, 멀리서 어렵게 찾아왔는데, 마중도 안나오고 언제, 어디로 모여서 같이 출발한다고 한다. 

3. 어렵게 시간을 내어서 멀리서 찾아가니 환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진다.

4. 준비하는 쪽에서 따뜻한 밥이라도 미리 준비하여 배고플 때 허기를 면하게 해줄줄 알았는데, 각자 도시락을 준비해 오라고 한다. 

5. 평안한 잠자리를 기대하고 왔는데, 잠자리도 각자 알아서 여관을 찾아 잠을 자라고 한다. 

멀리서 무수하게 왔다 가신 분들의 대다수의 질문과 부탁은 위와 같다. 이런 질문 앞에 설 때마다, 첫 순례단을 조직할 때의 순례를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 순례를 하는 경우 영남신학대학교 동아리 단위로 1박 2일 또는 2박 3일 순례를 하는 경우에는 여름철에 순례할 때는 졸업한 영남신대 동문 목사님의 교회가 순례하는 지역 인근에 있을 때는 부탁하여 그 교회 교육관이나, 본당 장의자에서 잠을 자고 새벽기도회 마치고 순례를 출발하기도 했지만, 겨울에는 난방 문제로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비용 문제로 단체 순례는 당일 순례를 하든지 아니면 가까운 곳에서 순례를 하는 경우에는 그날 순례를 마치고 집에 가서 잠을 자고 이튿날 새벽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전날 순례를 마친 곳에서 다시 순례일정을 시작한다. 집에서 먼 거리에서 순례할 때에는 값싼 여관이나, 여인숙을 찾아 그곳에서 숙박하고 이튿날 다시 순례를 한다. 이때 멀리서 오신 분들은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잠자리를 찾아 쉬고 이튿날 어디서 출발할지를 말하고 헤어진다. 이때 순례에 참가한 분들은 대부분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왜 잠자리도 미리 구해 두지 않고 순례에 초청하느냐?” “서울의 큰 교회에서 스폰서를 구해서 따뜻한 밥과 잠자리 정도는 해결하고 우릴 불러야 되는 것 아니냐?” 이러한 질문을 늘 받아 왔기에 차분하게 대답한다. 

처음 순례를 할 때에 그렇게 준비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조직된 순례단도 없었기에 순례하기 위하여 참가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각자의 참가하는 비율에 따라 회비를 내어 공동 경비로 사용했다. 그때 필자가 길을 알고 전체 순례길을 알기에 일정을 관리하는 단장을 맡았고 한 분이 총무 겸 회계를 맡고 한 분이 문서 기록과 사진 기록을 남기기로 하는 조직으로 순례단을 조직해  출발하고 같이 걷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잠을 잤다. 그런데, 같이 회비를 각자의 일정에 따라 내게 되니 몇 가지 문제가 파생되었다. 각자의 삶의 바퀴가 다르고, 건강 상태가 다른데, 같은 보폭으로 걷는다는 것이 상당한 무리가 되었다. 어떤 이는 보폭이 넓고 어떤 분은 보폭이 좁다. 어떤 분은 빠르고 어떤 분은 느리다. 어떤 분은 자주 쉬기를 바라고 어떤 분은 많이 걷기를 바란다. 어떤 분은 건강을 위해 속보로 걷기를 바라고, 어떤 분은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걷기를 바란다. 순례단이 움직일 때 어떤 속도로 걸을지는 그날 그날의 일정과 목표에 따라 정해진다. 가령 어느 날은 동래읍성에서 양산 물금역까지 순례를 하기로 하고 금정산을 넘어서 가는 노정을 정한다면 시간당 5-6km 속도로 걷든지 아니면 12시간 이상을 순례하면서 시간당 4km 속도로 걷든지 해야 된다. 배위량은 1893년 4월 18일 동래읍에서 출발하여  범어사 인근에 주막에서 잠을 자고 19일에 물금까지 갔다. 그렇게 범어사에서 순례를 마치고 범어사에서 부산 노포동까지 가서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로 왔다가 다음에 노포동으로 다시 가서 범어사로 올라가 고당봉-대장봉-양산 다방 3거리를 거쳐 물금역까지 가는 노정을 선택하여 그렇게 했다. 그런데 이 노정이 불편하고 하루란 시간이 아깝고 번잡하여 필자 혼자서 이 노정을 순례할 때에는 힘들어도 동래읍성 – 부산대-남문-동문-북문-고당봉-대장봉-양산다방 3거리-물금역 노정을 하루에 걷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두 사람 이상이 함께 할 때는 조정하여 하룻길을 삼일길로 나누기도 했고, 팀을 나누어 세 코스로 나누어 걷도록 해 봤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함께 모여 걷기를 원한다. 얼굴이라도 보고 함께 걷자고 한다. 함께 걸을 때는 위와 같은 문제가 생긴다.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 어떤 대학교 교수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다. 이 분은 아주 재미있는 분이셨는데, 산티아고 길을 걷는 것이 소원인 자신의 아내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를 나왔지만, 첫날은 함께 걸었는데, 문제가 생겨 아침에 출발은 같이 하고 저녁에 어느 알베르게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그 알베르게에 먼저 도착한 사람이 두 사람의 잠자리를 예약하고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출발은 둘이 같이 하지만, 각자가 알아서 걷고 각자가 알아서 노중에서 밥을 먹는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번은 길이 어긋나서 만나지 못하다가 요행히 알베르게에서 다시 만나서 매우 반가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내가 왜 그렇게 어려운 순례를 하느냐고 질문하니, 그렇게 해야 부부 사이에 평화가 있다고 했다. 각자가 보폭이 다르고 각자 걷는 속도가 다르고 각자 어디서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이 있고 어디서 쉬고 싶은 것이 다 다른데, 그것을 맞추기가 매우 어려워 그렇게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싸움이 나고 순례 나왔다가 이혼을 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는 각자의 취향대로 걷고 쉬고 하면서 순례의 의미를 다진다고 했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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