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신앙산책’에서는 신앙인의 교양상식을 위해 우리의 소중한 유산 ‘한글 해례본(解例本)’에 대한 내용을 ‘(上)-(下)’ 두 번에 걸쳐서 올려드리고자 합니다. 제77주년 광복절을 보내며 우리나라를 호시탐탐(虎視耽耽) 노려온 중국과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안 되겠다는 교훈을 떠올리게 됩니다.
선대(先代)의 조상이 후대(後代)에 남긴 특정 물건이 경우에 따라서는 한 국가가 뒤흔들리기도 할 만큼 그 영향력이 매우 큰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유산’을 지정하는 ‘국제적인 전문기구’가 존재하는 것이고 또 각 나라마다 문화재에 관한 사물을 관장하는 ‘문화재청(文化財廳)’이라는 기관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80여 년 전, 어느 한국인이 목숨을 걸고 지켰던 유물의 정체가 공개되자 중국이 발칵 뒤집혔다고 하는데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중국은 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문화의 중국 예속화를 시도하면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한복(韓服)과 한식(韓食) 등 ‘한국의 문화’를 모두 자기들의 것이라고 우기고 있고 그 추악함은 하늘을 찔러 한국에서의 반중(反中) 감정이 반일(反日) 감정을 넘어섰을 정도이죠. 특히 중국은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될 문제에 손을 댔는데요. 바로 그것이 ‘한글’입니다. 한글은 조선 역사상 최고의 성군(聖君)이었던 세종대왕이 창제(創制)한 것으로 인류가 사용하는 전 세계 7000여 개의 문자 중에서 유일하게 창제연도와 창제자가 명백히 밝혀진 위대한 유산이죠. 우리 민족의 언어인 한국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자긍심과 관련하여 성역(聖域)과도 같은 부분이지만 추악한 중국은 전 세계가 칭송하는 위대한 한글을 가만히 둘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훈민정음은 중국어의 발음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느니, “훈민정음은 옛 한자를 베껴서 만들어졌다”는 등의 헛소리를 하며 빼앗으려 했죠.
하지만 세종대왕은 후대의 중국이 몹쓸 행보를 벌일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지 한글을 빼앗기지 않도록 미리 ‘결계(結界: 타인이 들어올 수 없도록 하는 지역의 경계)’를 쳐 놓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글의 창제과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이었죠.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한글 창제에 대한 여러 가지 구구한 추측이 난무했지만 해례본이 발견됨으로써 한글이 어떤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가를 알 수 있게 됐습니다. 해례분이 발견된 시기는 1940년으로 당시 일본은 한국의 문화를 말살시키려고 했던 시기였습니다. 즉 한글의 창제원리가 들어가 있는 해례본 역시 그 존재를 들키게 되면 일본에 빼앗길 것이 분명했죠. 하지만 목숨을 걸고 해례본을 지킨 사람이 있었는데요. 그가 바로 《문화지킴이》라고 알려져 있는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 1906~1962)》 선생입니다.
전형필 선생은 스물네 살 때, 부모 양가의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아 하늘이 내린 백만장자가 되었는데 그는 이 유산을 이용하여 막대한 양의 국보급 문화재를 지켰습니다. “나라 잃은 백성을 도와주는 변호사가 되어라”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평생의 스승이자 독립운동가인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을 만나며 민족의 혼과 얼을 지켜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자, 오세창은 당시 전형필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조선은 꼭 독립이 되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화수준이 높은 나라가 수준이 낮은 나라에 영원히 합병된 역사는 없고 그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지. 그렇기 때문에 일제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의 문화유적을 자기네 나라로 가져가려고 하는 것일세.” 이 말에 감명을 받은 전형필은 마음을 굳게 먹고 당시 일본으로 유출되는 서화(書畵)와 도자기, 불상, 석조물, 서적 등을 닥치는 대로 수집해서 이 땅에 남기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한 사람은 국문학자 김태진의 제자였던 이용준으로 자신의 처가인 안동에 있는 광산김씨(光山金氏) 종택(宗宅: 종가가 대대로 살아온 집) 서고(書庫)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을 제일 먼저 발견하고 이 사실을 스승 김태진에게 이야기했고 김태진은 이용준과 함께 안동으로 내려가 해례본을 직접 확인하고서 경악을 금치 못했죠. 그들은 이 위대한 유산을 잘 보관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물색했고 김태진은 당시 문화재 수집을 활발히 하고 있던 전형필을 떠올렸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