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광화문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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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네거리에 오면 언제나 감회가 새롭다. 세종대로를 도보로 건널 때면 신호가 허락하는 한 천천히 걸으면서 내가 지금 대한민국 아니 한반도의 딱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을 되새긴다. 이 땅에 명승지가 수없이 많지만 지리적, 역사적, 정치적 의미를 다 묶어 보면 광화문 광장을 이길 곳이 따로 없다. 

여기 서면 바람결에 62년전 4.19 학생의거의 함성이 귀에 쟁쟁하다. 그때 그날, 봄철의 햇볕 아래 무거운 교복 상의 앞 단추를 풀어헤치고 이 길을 메우며 구호를 외치던 대학생 무리 속에 나도 있었다. 총성이 울리고 대열은 무너지고 나라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지난 광복절 날, 광화문 광장의 새로워진 모습이 궁금해 이곳을 찾았을 때 광장 일대는 귀청을 뚫는 소음으로 가득 찼다. 대형 스크린이 두세 군데 높이 설치되어 그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앉거나 서서 고성능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격렬한 연설에 박수와 함성을 보내고 있었다. 놀랍게도 연단의 사람이 몇 마디마다 할렐루야, 아멘을 외치고 군중도 이를 따라하고 있었다. 

광장 한편에서는 플래카드를 두른 트럭을 세워놓고 어떤 여성이 마이크를 쥐고 길 건너 미국대사관 쪽을 바라보며 반미구호를 외친다. 나름대로 열심히 연설을 하는데 그 앞에 모인 인원은 수십 명에 불과하지만 확성기의 성능은 매우 좋아 저편의 집회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상당부분 상쇄하고 있었다. 광장 개조공사 완료를 발표하면서 시 당국자가 앞으로 집회나 시위에 새 광장을 이용하는 것을 금하겠다고 공표한 것을 기억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날의 광화문 광장은 이전이나 다름없는 소란의 현장이 되어 있었다. 

2016년 촛불 데모에 대한 반대운동으로 이제는 매우 유명해진 서울의 한 기독교회와 그 담임목사가 광장 남쪽 공간에 집회신고를 하고 광복절 오후 윤석열 정부에 대한 응원과 전 정권 지지세력에 대한 공격을 위해 행동을 벌인 것인데 이에 호응하는 군중이 수만 명으로 불어나 결국 새 광장까지 점령하게 된 것이다. 조용한 광장을 시민에게 제공하려던 구상이 처음부터 빗나갔다. 지난 세월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을 일본인들이 헐어 자리를 옮기고, 제자리로 돌아왔다가 또 한번 다시 짓고 광화문 광장도 몇 차례 형태를 바꾸고 하는 동안 이나라도 이리저리 진로를 수정했다. 광장의 함성이 국가의 질서를 흔들고 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나라의 장래는 어둡다. 

할렐루야, 아멘이 기도가 아니고 군중의 합창이 되어 광화문 광장에 울려 퍼질 때 나 같은 기독교인은 오직 당혹스러울 뿐이고 그런 소리를 하나님이 어떻게 들으실지 걱정에 휩싸인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사랑과 관용과 겸비함을 인격에 채워가지만 싸움을 잘하도록 배우지는 못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한 사람이라도 더 찾아 함께 나누고자 교회가 애쓰고 기도할 때 광화문 광장에서 울리는 할렐루야, 아멘이 무슨 도움이 되리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저런 정당 이름으로 행해지는 집회에서 그런 외침은 개인의 자유인지 몰라도 합당치 않다.

우리의 바램은 새로 단장한 광화문 광장이 더 이상 격동의 현장이 되지 않고 오직 민족의 역사에 대한 감사의 공간으로 남는 것이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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