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고아들의 벗, 사랑과 청빈의 성직자 황광은  목사 (11)   불우한 이웃의 벗이던 소년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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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로 나날을 보내던 시절 ③

동화로 생명의 소중함 일깨워

‘독서 전쟁’이란 수필집 출간

인간학·신학, 광범위한 독서 중요

몸이 상할 정도로 지독한 독서광

“참새 한 가족이 살고 있었어요. 아빠 참새와 엄마 참새와 그리고 새끼 참새 삼 형제가 아주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었죠. 아빠 참새와 엄마 참새가 먼 곳까지 날아가서 벌레를 물고 둥지로 돌아오면, 새끼 참새 삼 형제는 서로 자기 입에 먹이를 달라고, ‘짹짹짹’하며 노오란 입을 벌리곤 했대요. 그러면 아빠 참새가 물고 온 먹이는 큰형 참새에게 주었고, 엄마 참새가 물고 온 먹이는 둘째 참새 입에 꼭꼭 넣어 주었대요. 그리고 나서 이번에는 막내 참새에게 먹을 것을 주러 서둘러 날아갔대요.

그러나 아빠 참새와 엄마 참새는 먹이를 구하다가 그만 그물에 걸려서 나쁜 아이들에게 붙잡혔어요. 나쁜 아이들은 좋다고 싱글벙글 웃으며 아빠 참새를 사정없이 땅에다 힘껏 메쳐 죽이고 말았어요. 그것을 본 엄마 참새는 ‘여보’하고 짹짹거리며 슬프게 울고 또 울었어요. 그러나 얼마 후에 엄마 참새도 나쁜 아이들한테 똑같이 비참하게 죽고 말았어요. 나쁜 아이들은 새끼 참새들의 먹이를 찾아 나온 아빠 참새와 엄마 참새를 죽여 털을 뽑고는 숯불에 구워서 맛있다고들 하며 먹어 버렸지요.

새끼 참새 세 마리는 아빠 참새와 엄마 참새가 먹이를 가지고 돌아오기를 하루 종일 기다렸으나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 다음날도 기다렸으나 역시 돌아오지 않았대요. 사흘째 되는 날 새끼 참새 삼형제는 배가 고파서 서로 붙들고 울고 울다가 그만 세 마리 모두 다 굶어 죽고 말았대요.”

광은 소년은 말을 마친 후 꼬마들의 얼굴을 한번 쭉 훑어보았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슬픈 일이니? 너희가 행복한 참새 가족을 다 죽이는 나쁜 아이들이 될 수는 없지?” 꼬마들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새그물을 거두었다.

‘독서 전쟁’

황 목사가 그 시절에 얼마나 많이 독서했는가 하는 사실은 그가 생전에 쓴 ‘독서 전쟁’이란 수필에 남아 있다. 요새는 폐간되었으나 그 당시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던 신앙 월간지 <새 생명>에 실렸던 그 원고를 여기에 전문 그대로 옮겨 실어야만 할 이유가 있다.

황광은 목사가 서거한 다음해인 1971년에 그의 친구 안성진 목사와 황 목사의 미망인 김유선 여사의 노력으로 <황광은 수상집>이 간행되었다. 거기에 ‘독서 전쟁’이 수록되기는 했는데, 그의 소년 시절을 추억한 대목은 무슨 이유로 말미암아서인지 쑥 빠지고 말았다.

그때 필자도 유고를 정리한다고 겉으로만 허둥지둥 덤벙거렸는데, 혹시 그것이 필자의 과오나 아니었던지 해서 미안스러움을 느낀다. 여기 ‘독서 전쟁’의 전문을 옮겨 실어 <황광은 수상집>을 보완함과 아울러 그의 소년 시절을 미루어 보려 한다.

가을이라고 해서 꼭 독서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우리네 살림살이가 아직은 에어컨 없는 살림이어서 그런지 그 무지막지한 더위는 우선 넘겨 놓아야 책이건 신문이건 읽을 것이 아니냐는 데서 가을과 독서를 붙들어 매는 습성이 생긴 것 같다.

그런데 내 경우는 가을이건 겨울이건 독서다운 독서를 하지 못하는 불행이 있다는 고백이다.

목사는 우선 설교를 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한 교회에서 10년 가까이 봉사하다 보면 성서와 기도와 친근함도 중요하지만, 독서를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궁지에 몰리게 된다.

옛날엔 세태의 변화를 고양이 눈 뒤집히듯 한다고 표현했지만, 요사이 같아서는 아폴로의 속도나 팬텀기의 속도인 마하 2.5의 속도로 변화된다고 표현해야 할 이때에 하루라도 독서를 게을리하면 그것은 시대의 저능아가 된다는 의미일 것이니, 어찌 책을 손에서 뗄 수 있느냐는 것이 목사들의 생각이다.

신학자는 아니라도 신학의 조류는 일단 훑어야 하는 목사, 경제 사회와 문화 성장에 무관할 수 없는 목사, 한 인간이 잉태되었을 때부터 출생해 출세하고 살고 늙어서 사망해 추도식을 올리는 일에까지 관여해야 하는 목사의 독서는 인간학에서 시작해 신학에 이르는 너무나도 광범한 영역을 상대로 해야 한다.

그래서 다독에 탐독에 숙독을 겸해 이것은 독서인지 전쟁인지 분간못할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 주일이 지나면 우선 다음 주일에 해야 할 설교의 테마를 설정하고는 거기 해당한 저서를 두어 권 골라 놓는다. 그러나 그것을 손에 드는 것은 토요일 오후나 돼서요, 그것을 독파하는 것은 주일 새벽이 가까워올 무렵이니 이것은 독서가 아니라 차라리 고역이라 해야 하겠다.

결국 줄거리를 추리고 살을 뜯어서 내 설교의 바람벽을 다 막고나면 새벽 종소리가 들려오는 때가 많은 내 독서는 하룻밤 사이의 전쟁이요, 독파한 저서는 전리품이라고나 설명해야 될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본 한 만화에 비하면 아직은 여유가 있는 셈이다. 소련의 공산주의자들이 작가를 얼마나 혹사하느냐는 것을 만화로 표현한 것인데, 일단의 작가들이 감방에 갇혀 있고, 그 감방은 수도꼭지를 통해 잉크가 공급된다는 그런 만화였다고 기억된다. 그러니까 점점 불어 오르는 잉크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서 작가들은 열심히 펜에 잉크를 찍어 원고지에 무엇인가는 그려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잉크에 빠져 죽을 터이니까 말이다. 어렸을 때 본 만화지만 공산당은 참 지독하다는 것을 느껴본 일이 있다.

물론 억지로, 그것도 시간 안에 독파해야 하는 억지 독서가 형벌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 때문에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설교를 기피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책을 읽어야 하는 운명은 어렸을 때부터 잉태되었던 것 같다. 일제 말엽의 가난한 소시민의 아들, 중학교에 진학할 길을 놓쳐 버린 울분에 도전할 길은 독서밖에 없었던 것 같다.

지금도 기억되지만 내 어머니가 내게 간곡히 부탁한 말은 제발 책을 읽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내 독서가 지독했고 그것이 내 몸을 상하게 했던 모양이다.

나는 밤늦게까지 독서하고도 새벽에 얼음 위에서 냉수욕을 하고 또 책을 읽었다.

명작 순례는 물론 그 무미건조한(적어도 내 나이에는) 세계 사상전집을 탐독했고, 톨스토이와 가가와 도요히코(賀川量彦)의 저서는 하나도 빼지 않고 탐독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면서도 강의록으로 독습을 해, 후에 서울로 뛰쳐 올라와 중학 편입에 합격한 것을 보면 어머님의 근심도 무리가 아니었겠다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전투적인 독서는 내 운명적인 유산이라고 생각하고 쓴 웃음을 웃어 본다는 말이다.

김희보 목사

• ‘人間 황광은’ 저자

•전 장신대 학장

•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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