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경퀴즈문제 하나 낼 테니 맞춰 봐요.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3초 안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네, 말씀해 보세요.” “빌레몬서가 신약입니까, 구약입니까?” 이 질문에 답을 말하는데 3초를 넘기는 분들이 많다.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물론 ‘신약’이다. 그런데 오랜 신앙생활을 해온 성도들 중에도 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구약’이라는 오답(誤答)이 나오는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 질문에 오답을 말했다고 해서 성경지식이 부족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빌레몬서’는 신약 뒷부분에 나오는 책으로 전체가 ‘한 장(one chapter)’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덜 관심을 가지다보니 그 책의 이름이 어딘가 모르게 다소 생소해서 신약성서의 이름 같지 않다고 느껴지는데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빌레몬서’는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내는 사신(私信), 곧 개인적인 편지이다. 바울은 감옥에서 ‘오네시모’를 만났고, 주인인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돌려보내며 선처(善處)를 구하는 편지이다. 바울은 이 편지를 쓸 당시 죄수로 있었고 그가 갇혀있던 곳은 로마였으며 그 시기는 성경주석에 의하면 바울의 1차 로마 투옥시절인 주후 60~61년경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나는 최근 교회의 담임목사님을 통해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노예’였다는 말씀을 듣고 잠시 놀란 적이 있다. 빌레몬서의 성경구절(16절) 중에 “이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라고 했으나 이때의 ‘종’은 ‘남의 집에서 심부름이나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 정도로 이해를 했지 ‘종’을 ‘노예 신분’과 동일시(同一視)하지 못했었다. 성경사전에서 ‘오네시모’를 찾아보았다.
*오네시모(Onesimos)는 빌레몬의 노예로서 죄를 짓고 도주하였다가 로마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 회심(回心)하여 신앙인이 되었으며 바울에게 ‘빌레몬서’라는 편지를 쓸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바울은 감옥에서 ‘오네시모’를 만나 그의 신실함을 확인하고 옛 주인 빌레몬에게 찾아가 잘못을 빌도록 말하였다. 그가 쓴 편지 속에서 바울은 ‘오네시모’는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이며 자신의 ‘심복(心腹)’이고 ‘사랑받는 형제’로 칭하면서 그를 따뜻이 맞아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만일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잘못한 것[빚]’이 있다면 자신이 대신 배상(賠償)하겠다고 적고 있다.
주인[빌레몬]에게 잘못을 범하고 도주했던 ‘오네시모’를 용서하도록 빌레몬을 권면하는 사도바울의 사려(思慮)깊은 인품을 통해 우리는 진한 감동을 받는다. 용서는 사람의 마음을 자유케 하며 동시에 행복하게 해준다. 용서는 용서받는 사람도 기쁘고 즐겁지만 용서하는 사람도 기쁘고 즐거운 법이다. 우리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용서하시는지 잘 알고 있다.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은 우리도 우리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죄인의 신분으로 하나님의 크신 용서와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오네시모’와 같은 존재들이다. 주님을 믿기 전에 우리는 ‘오네시모’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세상의 종, 죄의 종, 탐욕의 종, 사탄의 노예가 되어 이리저리 끌려 다니던 우리들이었다는 말이 정직한 표현일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도망자였고, 참담한 상황 아래 있던 자였고 무익한 자였다. 일마다 때마다 충동(衝動)에 따라 살던 우리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우리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장소에서 우리를 불러주셨고 만나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 그리하여 회개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용서와 평강과 기쁨과 자유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래서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는 삶은 참으로 복되고 유익한 삶이다.
‘오네시모’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죄인이든지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큰 용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됨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였다면, 이제 더 이상 죄의 종, 세상의 종, 도망자나 노예상태로 머물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 복음의 종으로 살아가야 할 일이다. 용서받은 ‘오네시모’가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여생동안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으로 사는 것이 우리 모든 믿는 이들의 간절한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