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 장면, 경험적 세부묘사 표현 뛰어나
인생의 참다운 평안, 성경 진리 깨달음 고백
뒤러의 그림 <성 제롬>은 갈등을 잘 보여준다. 뒤러는 상상 속의 장면과 경험적인 세부묘사를 정밀한 선과 형태로 표현하는데 아주 능했다. 인물들을 아름다운 자태의 황금으로 빚어내는 원근법과 명암, 그리고 색채를 조화시켜 감성적인 작품을 창작했다.
‘르네상스’는 프랑스어로 ‘재생’, ‘부활’이다. 르네상스의 결과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성경 번역 때문에 로마 가톨릭 교회의 박해로 죽은 사람들이 외친 것은 원문으로 돌아가자는 구호였다. 제롬이 번역한 라틴어 불가타만을 성경으로 인정하는 로마 가톨릭에 대항해 올바른 신앙을 찾으려고 히브리어와 헬라어에서 자국 언어로 성경을 번역해 바른 신앙을 갖자는 운동이 종교개혁이었다. 목숨을 건 종교개혁 운동이 인문주의자들의 눈을 뜨게 했다.
사람은 항상 완벽하지 못하다. 비록 제롬이라 해도 그의 성경 번역이 온전하지는 못했다. 대표적인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무스는 1516년 헬라어 신약성경을 출판했다.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에서 그동안 공인본으로 알려진 불가타 라틴어 성경의 문제점과 많은 실수들이 밝혀졌다. 그 한 예로 “고해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를 에라스무스는 헬라어 원문에서부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로 번역해야 함을 지적했다. 그동안 하나님 나라와 고해성사를 연결했던 가톨릭의 교리를 수정한 번역이었다.
여기서 종교개혁가들은 “Sola Scriptura, 오직 성경으로”를 외쳤다. 성경에 무식한 가톨릭에서 성경에 근거를 두는 기독교로 갱신하자는 것이 종교개혁 운동이었다. 종교개혁가들을 지지한 뒤러의 내면은 제롬이 광야에서 수행자들과 함께 고뇌하며 성경번역에 심취한 것처럼, 진실을 찾아 탐구하는 뒤러 자신의 모습을 변형시킨 자화상이었다. 그래서 제롬은 왼손으로 돌멩이를 손에 쥐고 가슴을 친다. 오른손으로는 자신이 번역한 라틴어 성경을 잡고 있다. 이 그림은 독일의 섬세함과 이탈리아의 우주의 신비함의 조화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림 앞부분은 독일 풍으로, 배경은 이탈리아 풍으로 그려졌다. 배경인 이탈리아 풍은 매우 밝고 환하다. 하지만 <성 제롬>에서 뒤러의 메시지는 가톨릭의 화려함에서도 성경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 갈등하는 뒤러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뒤러의 갈등은 바로 제롬 앞에 죽어 몸통만 남은 자생하는 자작나무에 꽂힌 십자가였다. 성경을 외면한 독일교회를 보면서 고뇌하며 기도하는 뒤러 자신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성경의 진리를 찾기 위한 사람을 통해 진리의 생수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마실 수 있다는 뜻으로 나약하고 힘없는 피리새들을 그렸다. 피리새들이 생수의 강물에서 평화롭게 물을 마시며 쉬는 정겨운 모습에서 인생의 참다운 평안은 성경의 바른 진리를 깨달음을 고백한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