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목단상] 순교자 이태석 목사와 미PCUSA 총회장 이승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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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이태석 목사는 9.38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10월 11일 후퇴 중인 공산당에게 쇠사슬에 묶인 채 끌려가 채찍질과 구둣발로 말로 다 못할 곤욕을 치루며 온갖 고초를 당했다. 결국 공산군의 총에 맞아 49세의 젊은 나이로 주님의 이름으로 순교의 꽃을 피운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복음역사의 한 과정임을 입증하여 준다. 순교자 이태석 목사의 모교 경신학교는 2015년 경신개교135주년 경신중고 재학생 동문 등 관계자 3000명이 모인 기념식전에서 이태석 목사에게 명예졸업장과 자랑스러운 경신인상을 아들 이승규 장로에게 수여했다. 

이처럼 순교의 길을 간 이태석 목사의 아들 중에는 아들 이승만 목사와 이승규 장로가 있음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순교자 이태석 목사의 차남인 이승만 목사는 1950년 월남 후 5년 간 해병대 복무 미국 유학, 루이빌 장로교 신학대학원·예일대 신학대학원, 시카고 신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 취득 1960년 목사 안수, 루이빌 신학대학교 교목시절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흑인 민권 운동에 참여 1973년 미국 장로교선교부 중동선교 총무, 이후 25년 간 아시아 선교 총무 등으로 재직 등 유니온신학교 객원교수, 1978년 북한 방문, 이후 20여 차례 남북 교회 방문, 1988년 미국 장로교 세계선교 부총무 1992년 동양인 최초로 미국 교회협의회(NCC USA) 총무 선출, 1989년 미국장로교 총회(PCUSA)에서 동양인 최초로 총회장 등 세계 기독교계 우뚝선 일꾼이 되었다. 

부인인 이혜선 장로는 유니온신학교 과학·예술·종교센터 원장으로 재직중 많은 고난을 극복하고 노력한 끝에 미국장로교 세계선교부 부총무가 되었고 이태석 순교자의 삼남인 이승규 장로 역시 아버지의 신앙적 유산과 유훈을 굳게 지켜 교회에서의 충성봉사할뿐 아니라 삼성, 효성, 롯데 그룹 등에서 성공적인 기업경영을 하고 은퇴후 사회복지가 영업분야에서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바로 하나님이 베푸시는 순교자 자손들에게 주시는 약속있는 축복임을 확신케 해주는 것이라고 믿어진다. 

이승만 목사 아내는 남편과 함께 유니온 장로교신학교가 부설한 과학, 예술, 신학 연구소의 원장으로 일 하고 있다. 장녀 Anna는 코네티컷 웨슬리언 대학을 나와 초교파적인 중동지역 연구단체에서 일하고 있고 둘째 딸 Mina는 Rutguss대 법대를 나와 Guam 근처 Palau 국의 법무장관직에 있다. 뉴욕 대학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한 외아들 Peter는 켄터키주 루이빌에 살면서 music therapist로 일하고 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역사는 순교자의 피는 결코  헛되지 않음을 입증하여 준다.(계속)

김종희 목사

• 경신 중ㆍ고 전 교목실장 

• 전 서울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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