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웹툰(webtoon)작가가 ‘사인(sign)회 예약’과 관련하여 안내문을 올렸다. 여기서 ‘웹툰(web-toon)’이란 용어는 ‘인터넷’을 뜻하는 ‘웹(web)’과 ‘만화’를 뜻하는 ‘카툰(cartoon)’을 합성한 말로 《인터넷에서 연재하는 만화》를 뜻한다. 다음 글은 지난 8월 20일 한 인터넷 카페에서 웹툰 작가가 사인회 예약 오류에 대해 올린 ‘사과문’의 전문이다.
“사인회 예약이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예약 과정 중 불편을 끼쳐드린 점, 다시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인회 예약이 확정되신 분들께는 다음 주초 중에 사인회 순번 및 도착시간 관련 안내 문자를 발송해 드릴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이 광고문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의 댓글들이 달려있었다고 한다.
*[학생A]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해!
*[학생B]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심심한 사과?’
*[학생C] ‘심심한 사과’ㅡ이것 때매 더 화나는데… 꼭 ‘심심한’이라고 적으셔야 했나요?
위의 사과문에 나타난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과 관련하여 ‘심심한’이라는 말이 지닌 ‘깊고 간절한’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위에 예시한 댓글과 같은 유치한 발상은 나오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다시 말해서 ‘심심한’을 ‘싱거운/지루한’의 뜻으로 해독하였다는 말이니 젊은이들의 우리말 문장해독력은 참으로 걱정되는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지난 8월 25일자 중앙일보 박형수 女기자가 ‘분수대’난에 ‘심심한 사과’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쓰면서 이 이야기가 더욱 널리 확산이 되었다. 박 기자가 쓴 기사의 내용의 일부를 발췌해서 여기에 옮겨본다.
“최근 불거진 ‘심심(甚深)한 사과’ 논란은 ‘깊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사과를 전한다’는 의미를 가진, 매우 공적이고 정중하며 관용적인 표현이 어쩌다 ‘지루한 사과’로 오독돼 일부 네티즌이 분노 버튼을 누르게 됐을까. 문장해독력의 논란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해엔 ‘금일(今日)’이 ‘오늘’이냐 ‘금요일’이냐를 두고, 또 2020년엔 ‘사흘’이 ‘3일’이냐 아니면 ‘4일’이냐에 대해 논쟁의 불이 붙었었다.”
‘심심한’이라는 말은 ‘심심한 사과’뿐 아니라, ‘심심한 감사,’ ‘심심한 조의,’ ‘심심한 동정’등의 어귀로 우리가 신문을 비롯한 각종 매스컴에서 자주 접하는 용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넌센스 퀴즈’ 같은 해프닝이 발생하는 현실은 그 원인이 우리나라 정부의 한글전용정책으로 인해서 1971년 이후,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한자가 모두 사라진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전(前)정부 임기 중이던 2018학년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상 고학년의 도덕이나 사회 교과서 등에 한자어를 나란히 병기(倂記)하는 방식을 검토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그런데 한 차례 공청회 이후, 한자 병기 안(案)은 한글전용주장자들에 의해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한자’는 ‘중국글자’이지만 우리말을 표기하는 ‘한자어’는 중국어가 아니고 엄연히 ‘한국어’이다. 우리말의 어휘(語彙)는 70% 이상이 한자 어휘로 이루어져 있다. 한자공부가 아니면 우리말의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를 구별해서 가르칠 방도가 없다. 한글전용주장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동음이의어’문제는 예문을 만들어 가르치면 된다고 한다지만 한자를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한자를 보는 순간 자동적으로 그 의미가 머리에 입력이 되는 ①의사(義士), ②의사(醫師), ③의사(意思), ④의사(議事), ⑤의사(義死), ⑥의사(疑事), ⑦의사(擬似), ⑧의사(醫事) 등의 동음이의어를 어느 세월에 일일이 예문을 들어 가르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성경책에는 수많은 한자 어휘가 들어있다. ‘개역’성경이 ‘개역개정’으로 바뀌면서 많은 한자 어휘를 우리말로 풀어서 옮겼으나 아직도 그 작업은 요원(遙遠)하다. 연전에 문장로가 출간한 ‘성경한자용어사전’의 작업을 통해서 매우 난해한 용어로 예를 들었던 ‘공궤供饋=음식을 대접함)’라는 한자용어는 신약에도, 구약에도 나오는데 ‘개역개정’의 경우, 신약(마태 25:37)에는 “음식 대접”으로 풀어서 옮겼으나 구약(삼하 19:32)에는 여전히 ‘공궤’ 그대로 남아있다.
“심심한 사과”와 같은 웃지 못할 해프닝은 세월이 흘러갈수록 그 파장이 더욱 심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은 있으나 지금이라도 초등학교에서의 한자교육을 다시 부활하는 것만이 이런 해프닝을 예방하는 확실한 대안이 될 것이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