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장편소설] 입원과 사랑의 고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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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토요일, 신주쿠는 여름 축제 때문에 온 도시가 시끌벅적하다. 춘원은 오늘도 좋지 않은 건강을 무릅쓰고 그의 차가운 하숙방에서 시간에 쫓기면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었다. 매일신보에 연재하던 장편소설 ‘무정’을 인기리에 끝내고 ‘청춘’잡지에 ‘소년의 비애’, ‘윤광호’, ‘방황’ 등의 단편소설을 연이어 발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저런 이유로 건강을 전혀 돌보지 않은 채, 춘원은 그의 역량을 총동원해 글을 쓰고 또 쓰고 있었다. 춘원의 붓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 ‘개척자’를 1917년 매일신보에 또 연재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등 그의 작품활동은 멈출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결국은 문제가 터졌다. 춘원의 지병인 폐병이 크게 재발했다. 멈추지 않는 심한 각혈로 춘원의 좁은 다다미 하숙방 전체가 붉은 피로 물들었다. 결국 춘원은 하숙집 주인의 신고로 부카케 병원 응급실에 실려왔다. 이 소식은 씨즈코에 의해 곧 허영숙에게 전달되었다. 야밤중 깊은 잠에서 연락받은 허영숙은 놀란 가슴을 움켜쥐고 택시로 황급히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멈출 줄 모르던 각혈은 이젠 멈추고 혼수 상태에 있던 춘원도 제정신으로 돌아와 있었다. 정신없이 달려 온 허영숙을 보자 춘원은 그 특유의 미소로 씨익 웃으며 “뭣하러 와요? 별거 아닌데. 아무튼 고마워요.” 춘원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인사를 건넨다. 허영숙은 먼저 야간 당직 의사를 만나고 와서는 아직도 입가에 여기 저기 묻어 있는 붉은 핏자국을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있었다.

“어쩌자고 몸관리를 이따위로 허술하게 하였소? 무리하지 말라고 그토록 당부했거늘.” 허영숙은 약간 화난 기색으로 춘원을 마치 누나처럼 나무라고 있었다. “못말리는 사람! 그냥 놔두면 밤잠 자지않고 글만 쓸 사람인데, 이젠 어찌할꼬. 두 손을 묶어 둘 수도 없고.”

허영숙의 중얼거림이 계속되고 있었다. 링거 주입라인을 살펴보면서 허영숙은 춘원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동안 병원약은 제대로 먹었어요?” “열심히 먹고 있소.”

춘원의 음성에는 허영숙을 향한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 섞여 있는 듯했다. 이제 어느정도 춘원의 병세가 안정권에 들자 5층 입원실로 옮기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5층은 폐결핵 병동이다. 모든 직원들과 보호자들은 마스크를 써야한다. 전염되는 병이므로 소독과 손을 자주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어느새 창밖은 어둠이 사라지고 먼동이 트는지 사방이 환해지고 있었다. “이젠 집에 가세요. 오늘 출근 준비도 해야 하고 눈도 좀 붙여야 할텐데.” 춘원은 허영숙을 걱정해 주고 있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말아요. 학생!” 어느새 허영숙은 자신의 말투에 친근감이 들어간, 단어들을 격의 없이 구사하고 있었다.

춘원은 자신의 식은땀을 하얀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있는 허영숙의 까만 눈동자를 응시하며 조용히 말했다. “허 선생! 정말 고마워요.”

춘원의 말투에도 어느새 ‘님’자가 빠져 있었다. 상호 친근감이 이토록 빨리 오는가. 물수건으로 춘원의 손을 닦아줄 때, 춘원은 손에 힘을 줘, 은근히 허영숙의 손에 고맙고 관심이 있다는 신호 같은 것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새 춘원은 잠들고 있었다. 평화스럽게 잠자는 춘원의 잘 생긴 얼굴을 조용히 내려다 보면서 허영숙은 스스로 다짐한다.

“내가 철부지 이 남자를 살려내야지. 고아처럼 지금까지 외롭게 살아왔다는 이 남자의 친구가 돼줘야 겠어. 그리고 내가 지켜줘야지. 이 남자가 지금 각종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쓰고 있는 모든 작품들로부터 좀 편히 쉬게 해 줘야돼. 절대 휴식이 필요하다니깐.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 거야.” 허영숙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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