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군림하거나 통치하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친화력으로 세계인을 이끌었고, 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면서 그의 장례식이 화제가 되었다. 지난 9월19일에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홀에서 거행된 장례식은 여왕의 나이인 96세를 기려 장례식 96분전부터 영국의 명물인 빅벤을 통해 매 1분마다 한 번씩 종을 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신임 찰스3세를 비롯한 300여 명의 왕족과 전 세계에서 모여든 500여 명의 각국 정상급 조문객과 이들을 감싼 백만 명의 시민 그리고 전 세계에서 영상을 통해 장례식에 참여한 40억의 세계인들의 애도속에 장례식은 거행되었다. 오전 11시 55분, 장례 예배를 알리는 나팔수 4명의 나팔 소리와 함께 영국 전역에서 2분간 묵념이 이어졌다. 이어 국가가 연주되면서 장례식은 끝났다. 그후 오후 4시에 여왕이 어렸을 때 살았던 윈저성 내에 있는 조지 예배당에서 가족장례 예배가 치러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동안 여왕을 보필했던 의전장이 지팡이를 부러뜨려 올리는 것으로 여왕을 위한 복무가 끝났음을 알렸다. 그 후에 예배당 묘당에 아버지 조지 6세와 2002년에 작고한 어머니 엘리자베스, 동생인 마거릿 공주의 유해가 모셔진 곳에 얼마 전 작고한 남편 필립공 옆에 안장되었다.
1926년에 태어난 엘리자베스는 출생 당시 왕위승계 서열 3위였다. 그러나 10세 때 백부인 에드워드8세가 그 유명한 심슨 부인과의 스캔들을 일으키며 스스로 퇴위하자 아버지 조지 6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차기 왕위계승자가 되었고, 25세 때인 1952년 조지 6세의 갑작스런 서거로 여왕이 되었다. 그때에도 이번에 거행되었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된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은 TV를 통해 전 세계에 중계되었는데 당시에도 이미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외모를 선보였다고 외신은 전했다.
여왕은 13세 공주시절, 아버지를 따라 방문했던 다트머스 왕립해군학교에서 만난 훤칠한 18세의 사관후보생 필립을 만나, 애절한 사랑을 키우다가 1947년에 결혼했다. 그 후에 그들은 3남(찰스, 앤드루, 에드워드 왕자) 1녀(앤 공주)를 두고 73년간 해로하며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가정적으로는 매우 불행해, 큰아들 찰스 왕세자의 이혼과 다이애나비의 비극적인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 등 자녀들의 비정상적인 생활로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왔고, 이는 앞으로도 영국이 지금같이 평화로운 제국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알 수 없는 문제점으로 남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라는 입헌군주국으로서의 영국의 모토를 잘 지켜 모범적인 나라로 유지되어 왔지만,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앞으로 영국의 위상이 어떻게 유지될지는 알 수 없는 숙제로 남았다. 특히 그동안 군주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있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국가들과의 타협점이 어떻게 이뤄지는가는 숙제로 남았다.
여왕의 마지막 공식 일정은 존슨 총리의 퇴임을 승인하고,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영국의 세 번째 여성 총리가 되는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를 정식으로 임명한 일이었다. 이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보통사람이 걱정하는 치매현상을 제치고 여전히 단아한 모습을 보여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자신의 삶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지닐 수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멋지고, 우아한 그리고 모두의 사랑 받기에 충분한 자격을 지닌 인간 승리를 보여주었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