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가을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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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제 마음대로 와서 제 마음대로 떠나간다. 처서(處暑)만 지내놓고 나면 더위 걱정은 그다지 안 해도 된다.

조석(朝夕)으로 부는 바람이 가을을 살갑게 느끼게 한다. 그토록 숨 막히는 더위였는데 그것이 이렇게 싹 가시다니 새삼 자연의 섭리가 놀랍고 신기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람의 마음도 따라서 조금씩 바뀌는 모양이다. 가을은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게 한다던데 내 경우는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되려 어디에라도 훨훨 길을 떠나고 싶고 뭔가 할 일이 남아 있는 듯 그런 빚진 마음이다. 집 안에서는 집 밖을 그리고, 집 밖에서는 집 안을 그리는 야릇한 마음이다. 

황혼이 깔릴 무렵이면 한산하던 거리가 제법 붐빈다. 집이 있어 집으로 가는 사람들, 집으로 돌아오는 가장을 기다리는 가족들로 활기가 돈다. 집집마다 하나둘 불이 켜지고 웃음소리가 들린다. 

인생이 가는 길에는 예측 밖의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그 길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로 이뤄지리라. 창밖에 작열하던 여름이 서서히 물러가고 초가을의 맑은 햇살이 화사하게 퍼져 내리고 있다.

나는 지금 내 집 안방에 조용히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러면 되었지 않느냐? 그런데 나는 내 집에 있으면서도 뭔가 할 일이 남아 바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왔으니 살아 왔던 아름다운 흔적을 무엇인가 남겨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람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정녕 늘 나그네인 것이 아닌가? 학교 숙제를 끝내지 못한 학생의 기분으로 뭔가를 해야 하고 뭔가를 남겨야 하는 숙명의 바랑을 저마다 힘겹게 등에 지고, 한평생이 다하는 그 날까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존재가 아닌가?

가을이 가까이 오고 있다. 필자가 여든네 번째로 맞이하는 가을이다. 해마다 오는 가을이지만 해마다 조금씩 다른 느낌을 안겨 주면서 이번 가을도 가까이 와 있다. 밤이면 청명한 가을 달빛이 창연하다.

나는 비록 빈손으로 왔다 해도 무엇인가 남기고 가야 한다는 채무자로서 강박관념 같은 꿈을 꾸며 인생을 오늘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여름의 기상을 닮아 기운차고 시원스럽던 매미 소리도 좋았지만, 그래도 가을의 정조를 머금고 처량하고 애틋하게 마음에 파고들던 귀뚜라미 소리가 더 좋았다. 

깊어 가는 가을밤의 귀뚜라미 소리는 향수를 일깨우는 저릿한 음률로 긴 가을밤을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와 소슬한 바람소리와 함께 얼마나 많은 상념(想念)에 젖어 들었던가.

여름철의 매미소리와 가을철의 귀뚜라미 소리는 옛 시골 마을의 자연의 풍악이었으며 그것은 단순한 벌레소리가 아닌, 바람소리 물소리와 어울린 대자연의 청신한 천상의 멋진 협주곡(協奏曲)이 아니던가. 

그러나, 생각 해보니 해마다 귀뚜라미 소리가 줄어들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소리가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귀뚜라미 소리가 사라진 이 가을밤에 곱게 물들이던 상념도 이제는 빛이 바래고, 울적한 마음만 낙엽 쌓이듯 하니 곤충이 살아 남을 수 없는 오염된 환경 속에 사람인들 어찌 아무런 이상이 없을까?

문득 공초(空超)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꿈속에 꿈을 꾸니 꿈 깨어도 꿈이로다.”

기왕 인생이 한바탕 꿈일 바에야 싱싱한 젊음들의 희망에 찬 푸른 꿈처럼 노상 그렇게 신나고 보람된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금수강산 산허리 수채화로 곱게 물들어가는 산야(山野)! 오곡백과 알알이 영글어가는 황금들녘! 열매를 거두는 추수의 이 계절에 우리들의 신앙의 신령한 열매는 얼마나 튼실히 알곡으로 맺었는지.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였나니 열매 없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울 것이라.”

엄위하신 이 말씀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회심에 깊이 잠겨본다.

우리 모두 타작마당의 알곡이 되어 창고에 드리워지길 간절히 소원해 본다.

박노황 장로

<대구 남성교회·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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