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은 505년 전에 일어난 거대사건이다. 그 개혁은 한 사람이 일으킨 우리 인류 역사상 실로 엄청난 일로 기록된 실록이다. 거기에 현대, 특히 한국교회에 비치는 고도의 구체화 된 계시록이 있다.
신앙이 의롭게 한다. 은총만이 구원한다. 신앙은 나의 일이다. 가톨릭의 미사는 성직자의 성찬 행위에 교인들은 멀리서 방관하는 것이고 고해성사도 결국 위탁행위인 것이다. 종교개혁은 기독교의 신앙이 나의 주체적 신앙이란 것을 확인한다. 그것은 누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나 신부가 대신 믿어주고 구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인간의 원죄는 최초 살인사건인 가인이 예배보다가 아벨을 죽인 죄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심각하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 그 은총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종교개혁의 가장 엄숙한 공헌 가운데 하나, 그리고 근세사에 남긴 거대 공헌은 모든 사람은 누구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성직을 수행하는 제사, 곧 성직자와 같다는 가치관이다. 수녀나 부엌의 어머니가 다 똑같이 하나님의 성직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명의식이다. 1908년 세브란스 의학교의 졸업식이 있을 때 보고서는 그날 졸업생들이 다 공개적으로 성직에 안수받았다는 것이었다. 1917년 춘원 이광수는 이런 말을 남긴다. 곧 목사만 하나님의 일을 합니까. 아닙니다. 농부도 사무원도 관리도 다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주일만 하나님의 날입니까. 아닙니다. 화요일도 목요일 토요일도 다 하나님 날입니다.
1916년 연희전문학교가 개교했을 때에 그 수석학교가 상과였다. 그리고 거기 순교자 주기철이 입학하고 있었다. 사농공상이 사회신분제였던 때에 교회는 한국 최초의 대학에 상과를 그렇게 높이 세워놓았던 것이다. 선교사가 세운 서울 최초의 전문학교의 제1학과가 상과였다. 만인성직론이다.
루터의 3대 저술 가운데 하나가 <독일 귀족들에게 드리는 글>인데 그 핵심은 이제 신앙은 나의 것, 우리의 것이라는 원칙이다. 이제 내가 찬송하고 내가 기도하고 내가 고백하는 신앙이 된 것이다. 마지막 만찬 때에 주님께서 너희들 중 하나가 나를 팔아 내가 십자가에 달린다고 하셨을 때에 다들 내가 아니냐고 묻는다. 네가 아니라고 하니까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판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가 뛰쳐나가는 데도, 내가 아니라고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신다. 이런 개탄할 일이 어디 있는가.
종교개혁은 희랍인의 초대교회, 로마인의 중세교회를 지나 독일인의 프로테스탄트교회라는 구도를 가지고 있다. 한 민족이 역사의 주도력을 가지고 전개했다는 그림이다. 특히 근대사는 마틴 루터라고 하는 한 사람에 의해 열린 역사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세계 어느 모퉁이에서 일어난 일이든 다 나 자신의 문제가 된 것이다. 나의 신앙의 문제이다.
우리 교회는 초대 길선주 목사, 일제 말기 주기철 목사, 6.25 참화 이후의 한경직 목사 같은 거대 목화자들에 의해서 세계적 거대교회로 부상하고 있었다.
1909년에 미 국무성에는 한국이 세계교회의 기수국가라는 문서가 전달된다. 1934년에 김교신은 한국이 세계대륙을 걸머지고 일어서려고 허리를 펴는 모습으로 보았다. 세계가 경제 대공황으로 절망으로 허덕이던 때다.
한국교회는 지금 세계 최강이다. 2010년 8월 1일 <뉴스위크>는 한국이 로마제국 콘스탄틴대제가 한 것과 같은 일을 금세기에 해낼 것이라는 기사를 싣는다. 루터는 단신 세계 위기를 건졌던 인물이다. 한국교회, 그렇게 부름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