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으로 교회 예배가 온라인으로 드려진 지 벌써 3년째다. 이제 원래 예배의 자리에 돌아오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교회의 문은 차츰 열리는데 찬송가의 회복은 더디기만 하다.
그렇지 않아도 교회마다 현대 형식에 밀려 찬송가의 설 자리가 좁아져 가는 세상이라 개탄하면서 이 글을 쓴다. 가슴을 울리는 찬송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예배 의식에서도 찬송가를 찾기가 어려우니 지금이라도 찬송가의 제자리를 찾아주어야 할 것 같은 절박감이 이 글을 쓰게 한 동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찬송가는 선교사들과 믿음의 선배들이 순교의 정신으로 불러오다가 특별히 6·25전쟁의 참화로 절망에 빠져 있던 우리 민족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과 의지를 부여하는 은혜와 감동을 선물로 주었던 노래다. 또 지치고 무너진 우리의 삶을 일으켜 세우고 식은 영성을 회복시켜주는 영향력을 끼쳐온 것이 사실이다. 최근 들어 찬송가에 대한 본래의 권위는 점점 식고 복음성가에 대한 몰입으로 이제는 그 존재 가치가 무너져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에 늦게라도 찬송가의 존엄과 가슴 울리는 영의 양식을 더는 멀리 보내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가다듬어야 겠다.
찬송은 하나님의 명령이지만 복음송은 우리들의 신앙 간증으로 익히 알려져있지 않은가. 새벽마다 울리는 예배당 종소리에 발걸음을 옮겨 교회에 발을 디디고 풍금 반주에 따라 불렀던 찬송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생명의 길로 이끌어 살려낸 천국 가는 길의 안내잡이였다.
지난 8월 20일자 한국기독공보에 우리 통합측 교단의 현재 교인 수가 236만 명인데 2028년에는 200만 명이 붕괴된다는 기사가 1면 톱으로 실렸다. 물론 찬송가를 부르지 않는 탓이라고 하지 않겠지만 믿음의 후손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한 세대에게 찬송가 다시 부르기는 때늦은 감도 있지만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순수함을 지키기 위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찬송가 사랑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한동안 역동적이었던 대한민국의 크리스천은 복음의 세계로 질풍노도처럼 휩쓸었던 시대가 있었는데 이제는 점점 현대 사조에 물들고 다양한 종교의 침략(?)으로 개신교의 입지가 조금씩 좁아지고 있음을 실감할 때마다 찬송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해짐을 숨기지 못하겠다.
찬송은 오직 하나님께 드리는 곡조 있는 기도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자.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재난에서 구원받을 구호나 고난에서의 극복을 위한 기원의 의지, 회복과 치유 후에 감사와 자기 결단 등이 대세를 이루었던 때 찬송을 부르는 것에 심취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리고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무엇인가를 사유하고 감격하고 찬송하는 우리의 마음이 열리는 일에 더욱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찬송은 더 많이 불려야 한다.
정석산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