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로 모인 젊은이들 150여 명이 갑자기 몰린 인파에 압사사고로 사망하는 어이없는 참사가 일어났다. 참으로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다. 코로나로 억눌렸던 인파가 한꺼번에 쏟아져나와 좁은 골목길에 몰리면서 상상할 수도 없는 비극이 일어난 것이다.
재난으로 무고한 생명이 희생될 때마다 우리는 왜 세상에는 악이 존재하고 죄없는 사람이 고통받아야 하는지 늘 하나님께 질문하지만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신비앞에 겸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원래 핼러윈 축제는 매년 10월 31일 만성절로 성인들을 기리기 위한 기독교 축제일이었는데 미국에서 마녀나 괴물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며 즐기는 핼러윈이라는 축제로 변형된 것이었다. 얼마 전부터는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들과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대규모 축제로 자리 잡아 왔다고 한다.
그런데 정확히 505년전 1517년 바로 이 만성절이 시작되는 10월 31일 아침 마틴 루터가 95개 조항의 논제를 비텐베르크 교회문에 내걸고 당시 교황청의 면죄부판매를 비판함으로써 교회 역사를 바꾼 종교개혁이 시작된 것이었다. 올해 10월 30일 종교개혁주일 바로 전날 밤에 이런 참사가 일어난 것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고 더욱 마음이 아픈 사건이 되었다.
종교개혁이 500여 년이 지난 올해, 온 세계가 함께 겪은 팬데믹 코로나가 끝나가는 지금 이 시점에서 종교개혁이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켰고, 이 시대 종교개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사 연구가 알렉 라이리(Alec Ryrie)의 책 『프로테스탄트』 는 종교개혁이 세계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라이리는 개신교가 세계사에 공헌한 점을 세 가지로 꼽고 있다. 첫째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탐구정신이다. 마틴 루터는 성경과 성령의 한계 내에서 인간의 양심과 이성이 최고의 주권자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둘째는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관용과 평등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정착이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난 신대륙에서 그들은 이상적인 정치체제로서 국민의 의사에 의해 선택되고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제한된 정부를 옹호했다.
셋째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전이다. 사회학자 막스 웨버가 소명으로서의 직업윤리가 개신교의 정신과 관련이 있음을 보인 것과 같이 칼빈주의는 확실히 시장경제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개신교가 한국에 전파되면서 한국의 운명을 바꾸었다는 사실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독립운동이 개신교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사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사례를 들어 교회의 성장이 한국의 기적적인 경제발전과 함께 한 사실 등을 깊이 다루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그런데 코로나팬데믹이 끝나면서 현대문명의 핵심인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는 지금, 500여 년 종교개혁이 세상을 바꾸었듯이 이제 새로운 정신적 종교적 혁신을 필요로 하는 때가 아닌가 한다.
개신교는 원래 프로테스탄트라는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끊임없는 혁신과 개혁을 요청한다. 조직과 제도는 한번 형성되면 고착화되고 기득권층을 만들어내어 변화에 저항하고 부패하기 마련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에 저항해 초대교회의 정신을 살려낸 것처럼, 개신교는 새로운 시대적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기독교의 근본정신으로 돌아가 다시 새로운 혁신을 이루어낼 것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김완진 장로
• 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