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에는 진(陳)씨 성을 가진 진 장로님이 계신다. 지금은 은퇴하시어 구십이 가까운 고령에다 건강도 좋지 않아 소변주머니를 옆에 차고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고 자가(自家) 치료 중에 계신다. 그토록 원하시는 교회당에도 오지 못하시고 예배 시간이 되면 교회를 향해 집에서 찬송을 부르시고 기도를 드리신다.
이런 진 장로님을 생각하면서 지난 날 장로님의 모습들을 떠올릴 때가 많다. 진 장로님은 많이 배우지 못하셨다. 가진 것도 없으셨다. 옛날 구멍난 솥이나 양은 냄비 등을 때우는 일을 하면서 사셨다. 술도 많이 드셨고 고달픈 삶을 사시던 중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장로님까지 되신 것이다. 진 장로님에게는 특별한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장로님은 항상 앞자리에 앉으신다. 장로 지정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예배 전에 일찍이 오셔서 한참이나 기도를 드리신다. 어느 한 번이라도 중간이나 뒷좌석에 앉아 보신 적이 없다. 둘째, 장로님은 뒤에도 눈이 달리셨다. 앞자리에 앉아 계시면서도 그날 누가 예배에 참석했는지 못했는지를 훤히 알고 계신다. 예배 후 장로님은 저를 향해 목사님! 누구누구가 보이지를 않네요 라고 물으신다. 어찌나 정확하게 찾아내시는지 모른다. 셋째, 장로님은 찬송에 기백이 넘치신다. 걸음걸이도 젊은이들보다도 더 활기차시지만 목소리는 어찌나 크고 우렁차시든지 그 누구도 범접을 못하신다. 쩌렁쩌렁 찬송하시던 그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넷째, 장로님은 눈물이 많으시다. 기도하시다가도, 찬송을 하시다가도 소리 내어 엉엉 우신다. 장로님 왜 그리 우십니까? 라고 물으면 “주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요” “잘못한 것이 생각이 나서요” 라고 답하신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남들 보기에 좋지 않아서 절제를 하려고 해도 그렇게 울음이 터지고 눈물이 난다고 하신다.
다섯째, 장로님은 새벽기도회를 빠져 보신 적이 없다. 딱히 출타할 일도 없으셔서 일 년 열두 달 삼백육십오일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신다고 보면 된다. 기도도 얼마나 진지하고 간절하게 하시든지 성도들이 다 돌아가고 날이 밝아질 때까지 기도를 하시다가 가신다. 여섯째, 장로님은 성경읽기를 매우 열심히 하신다. 한 달에 한 권을 통독하시니 일 년이면 12번 이상은 통독을 하실 것이다. 지금도 소변주머니를 옆에 차고 있고 온 몸에 통증이 많이 있지만 성경만큼은 손에서 놓지 않고 말씀을 읽고 계신다. 성경을 읽다보면 아픈 것도 잊어버리게 되어 더더욱 성경을 읽게 된다고 말씀을 하신다. 일곱째, 장로님은 교회 일에 반대가 없으셨다. 당회를 하거나 의논을 하게 되면 “목사님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장로님을 만날 때가 30대 중반쯤 되었으니 아직은 미숙한 것도 많고 장로님 보시기에 이것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겠지만 하고자 하는 일에 반대가 없으셨다. 아마도 실패를 통해서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셨는지도 모르겠다. 여덟째, 장로님은 하나님께 드리기를 매우 좋아하셨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서 많은 액수의 헌금은 드릴 수 없지만 틈틈이 모아서 하나님께 드리는데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른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추수감사헌금을 드리려고 몇 달 전부터 조금씩 모아서 장롱 속 깊은 곳에 넣어 두었던 모양이다. 마침 가을 대심방이 시작되었다. 그날은 장로님 구역을 심방하는 날이라 장로님과 권사님 두 분이 함께 대원으로 심방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 순번으로 장로님 댁에 가서 예배를 드리기로 했는데 가서 보니 그 사이에 도둑이 들었던 것이다.
몇 달 동안 모아둔 추수감사헌금을 도둑맞은 것이다. 장로님은 잃어버린 다른 물건은 생각지도 않으시고 추수감사헌금 잃어버린 것 때문에 얼마나 애통해 하시던지… 그날, 속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이미 장로님의 마음과 감사예물을 기쁘게 받으신 것을 확신한다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를 드린 기억이 난다.
일생 진 장로님 같은 분을 만나서 목회하게 된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고 기쁨이었는지 모른다.
김선우 목사
<흥덕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