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는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촛불 하나도 올린 적이 없으니 날 기억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그리고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실 때, 또 당신의 손으로 만드신 저 은빛 날개를 펴고 새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를 때, 하나님도 손뼉을 치셨습니까? 아, 하나님, 빛이 있어라 하시니 거기 빛이 있더이까? 사람들은 이 작은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 발톱처럼 무딘 가슴을 찢고 코피처럼 진한 눈물을 흘리고 있나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그 많은 별들을 축복으로 만드실 수 있었는지요.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지금 이렇게 엎드려 기도하는 까닭은 별을 볼 수는 있어도 그것을 만들지도, 다 셀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세요, 하나님! 원컨대 아주 작고 작은 모래알만한 별 하나만이라도 만들 수 있는 그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감히 어떻게 하늘의 별을 만들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저 이 가슴 속 깜깜한 하늘에 반딧불만한 작은 별 하나라도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신다면 내 가난한 언어들을 모두 당신의 제단에 바치겠나이다. 향기로운 초원에서 기른 순수한 새끼 양 같은 나의 기도를 바치겠나이다. 좀 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하나님!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 묻은 이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 손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속에서도 풍금소리를 울리게 하는 한 줄의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
서두에 인용한 시는 이어령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에 실려 있는 작품이다. 이어령 교수는 지성(知性)과 이성(理性)의 힘으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교회로 대표되는 기독교나 하나님은 그에게는 별다른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시의 내용을 읽고 나면 그에게서 신앙인과 조금도 다름없는 신실한 ‘믿음’의 고백을 엿보게 된다.
그가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참으로 우연이었다. 그의 딸 이민아(1959~2012) 목사가 암에 걸렸다. 그것도 세 차례나! 딸이 아플 때 그는 혈육의 아버지로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딸은 하늘에 있는 아버지를 통해 위로받고 암이 나았다. 그때 그는 머릿속의 지식 곧 지성을 넘어서는 무엇이 있다고 느꼈다. 신을 찾는 발걸음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 후, 딸이 시한부 6개월 선고를 받고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며 깨달았다. 딸은 죽음 너머를 보고 있구나! 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 있다는 건 죽음보다 더 강한 신념 같은 ‘무엇’이 있다는 것임을 안 것이다. ‘지성’에서 ‘영성’으로의 대 전환이었다. 죽음 앞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주관하신다고 믿었다.
위의 글은 막역지우(莫逆之友) 남상학(南相鶴, 1940~ ) 장로가 서울 평창동에 소재한 ‘영인문학관(寧仁文學館)’의 전시회에 다녀와서 보내준 수많은 글 중에서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영인문학관’은 2001년 이어령(李御寧, 1933~2022) 교수와 그의 아내 강인숙(姜仁淑, 1933~ ) 교수(現 영인문학관장)의 각고(刻苦)의 수고로 만들어진 문학관이다. 이어령의 “영(寧)”과 강인숙의 “인(仁)”의 두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한국최고의 지성’으로 대표되던 이어령 교수가 일찍 그의 곁을 떠난 딸 이민아 목사를 통해서 ‘영성(靈性)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쓴 책이 『지성에서 영성으로』이다. 그 책은 이른바 ‘지성 이어령’이 전하는 ‘영성에 대한 참회론적 메시지’이다. 그가 영성으로 들어가기 직전 일본 교토에서부터 그가 하나님을 만나는 하와이 이야기, 영성의 길로 나아가고 들어오는 과정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놀라운 장면으로 일본에서 세례 받은 사건을 꼽는다.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인이 영성의 세계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신앙인이 아닌 지성인으로서 성경을 분석하며 비판해 온 그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구하게 되었는지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속에서 그의 변화된 모습을 낮은 어조로 조근 조근 이야기하고 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