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 불렸던 노아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온 후 포도 농사를 지었는데 이로 인해 취하여 하체가 벗겨진 줄도 모르고 누워 잠을 잡니다. 문제는 이것을 아들 함이 보게 되고 이 일로 저주를 받습니다. 함의 실수로 인해 그의 아들들이 벌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보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 ‘라아’입니다. 그냥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살핀다는 의미입니다. 그것도 ‘하체’ 즉 성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버지의 하체라고 말한 것은, 아버지 아내의 하체를 말합니다. 레위기 18장 7절에 어머니의 하체가 아버지의 하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이 아버지 아내의 하체를 보고 ‘말했다’ 여기서 ‘말했다’는 말은 ‘나아’인데 ‘같이 도모하다’는 뜻입니다. 함이 형제들에게 같이 죄를 짓자고 도모한 것입니다. 방주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무시무시한 심판을 겪고 나서도 인류의 죄성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창조시에도 재창조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점점 더 나빠집니다.
반면에 셈과 야벳은 포도주를 마시고 쓰러져 있는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뒷걸음질해 아버지의 하체를 가립니다. 여기서 가린다는 말은 ‘캇싸’인데 ‘덮었으며’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약점을 덮어준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덮어주심입니다. 죄 많은 인간의 연약함을 덮어주시고, 부끄러움을 덮어주셨습니다. 이것이 디아코니아입니다. 창조시에도 사탄은 벗은 몸을 보게 하고 수치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고 벌거벗은 수치를 발견한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습니다. 덮는 자에게 임하는 복은 무엇입니까? ‘창대케 하사’(아프테)는 ‘크게 하다. ‘거하게 하시고’, ‘축복을 나누어 가지게 하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복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셈의 자손 중에서 아브람을 낳고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추고 드러내는 사람이 있고, 감싸고 덮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이 사건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나안은 오랜 시간 축적된 악한 문화가 있었습니다.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이 가나안의 문명 안에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원주민을 따라 남의 수치를 보고 비웃고 손가락질할까봐 염려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대림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수치를 덮어주고자 오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다른 이들의 허물과 부끄러움을 감싸고 덮어주는 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