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비사] 한국, 언제부터 자유인의 공화국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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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광수가 본 “야소교가 조선에 준 은혜”

일제 시대 일본 동경에서 일어난 2∙8 독립선언의 선언문을 기초한 춘원 이광수는 1917년 7월 「청춘」이라는 잡지에 “야소교가 조선에 준 은혜”라는 글을 게재한다. 그는 예수를 믿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적 관찰을 기초로” 글을 쓰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예수교가 조선에 준 은혜를 총 여덟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조선인에게 서양 사정을 알린 것, 둘째, 도덕을 진흥시킨 것, 셋째, 교육을 보급한 것, 넷째, 여자의 지위를 높인 것, 다섯째, 조혼의 폐단을 교정한 것, 여섯째, 한글을 보급한 것, 일곱째, 사상을 자극한 것, 여덟째, 개성을 자각시킨 것 등이다.

다른 모든 항목이 그러하거니와 도덕을 진흥시킨 것에 관심이 간다. 조선의 국교는 유교였다. 유교만큼 도덕적인 것이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사회상은 참담했다. “만인이 일야[낮과 밤]로 생각하는 것이 악뿐이었오. 일언으로 말하면 생활에 아무 이상이 없고 도덕적 표준이 없도록 타락하였소. 내 유시의 소견, 소문을 회상하면 참 전율할 만하였소. 이렇게 혼돈하고 음악한 사회에 일조의 생활의 이상과 도덕의 권위를 준 것은 야소교회외다. 주색을 금하고, 사기를 금하고, 인생의 매매를 금하고, 상제를 배[예배]하며, 선을 추구하여 청순하고 이상 있는 생활의 신방식을 준 것은 실로 야소교회외다.” 사람은 하나님을 예배할 때 비로소 모든 질서가 바로 잡히게 된다. 도덕적이 된다.

2. 국부 이승만 장로, 자유인의 공화국 대한 민국을 건국하다

한국인은 부모가 살아있을 때는 못 본 척하다가 죽고 나서는 지극히 제사를 지내는 이상한 습성을 선교사들은 놀라운 눈으로 보았다. 그래서 “살아있는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진정한 효”라는 사실을 솔선수범으로 보여주며 전도했다. 삼강오륜을 강조하는 유교는 전혀 도덕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한국은 언제부터 자유인의 공화국이 되었을까. 이를 종교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가깝게는 불교의 고려나 유교의 조선을 보자. 왕이 다스리는 종의 문화에 속해있다. 일제시대 역시 신도 즉 천황제 체제, 천황이 다스리는 종의 문화였다. 해방 정국은 어떠한가. 공산주의 소련이 점령한 북한에는 북로당이, 자유민주주의 미국이 점령한 남한에는 남로당이 판을 치고 있었다. 둘 다 공산주의 정당이다. 공산주의는 무신론이요, 공산당 일당독재를 추구한다. 역시 종의 문화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 비로소 ‘자유인의 공화국이 건국된 때는 언제인가. 바로 1948년 8월 15일 국부 이승만이 건국의 4대 기둥-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한미동맹, 기독교입국론- 위에 세운 대한민국 건국부터이다. 이때부터 한국인은 백성에서 국민으로, 종에서 자유인으로 바뀌었다. 이승만에게 성경에서 말하는 자유를 핵심으로 하는 건국의 4대 기둥을 잉태하게 한 것은 바로 예수교회였다. 기독교복음이었다. 한국은 바로 기독교로 인해 비로소 자유인의 공화국이 된 것이다.

류금주 목사

<전 서울장신 교수·현 청교도신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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