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25 전쟁 끝자락에 태어나 70여 년의 세월을 살았다. “모든 것이 은혜 은혜로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하는 찬송이 뼛속 깊이 스며드는 나이가 되었다. 6.25 전쟁 이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시간들, 민주화와 산업화를 함께 이루기 위해 달리고 뛰며 살았던 내 인생 여정이었다.
언제나 세밑이 되면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말을 쓰지만 2022년 금년처럼 다사다난이란 말이 어울렸던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라도 가정도 교회도 개인도 참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이 중차대한 시간에 나는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 중심에 서서, 맨 앞자리에 서서 모진 바람을 헤치며 달려왔다.
올 한 해 동안 총회 제106회기 총회장, 한국교회총연합 제5회기 1인 대표회장, CTS기독교방송 공동대표의 직임을 감당해야 했다. 지난 총회에서 작성한 총회장 활동 보고서에는 한 회기 동안 걸어왔던 발자취 제목만으로도 여섯 페이지를 작은 글씨로 빼곡히 채우고도 남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울진·삼척지역 사랑의 집짓기 운동, 우크라이나 전쟁터 돌보기, 작은 자들과의 동행, 대통령 선거와 정권교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와 교육감 선거, 차별금지법 반대, 사학법 재개정 촉구, 교과서에 성평등 관련 수록 반대, 근대문화 유산을 통한 교회 본질 돌아보기, 마지막에는 10.29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까지 복제 기술이 조금 늦어짐을 원망하며 분초를 쪼개가며 달려왔다.
「복음으로, 교회를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라는 총회 주제와 「새롭게, 이롭게, 바르게」라는 한교총 표어를 성실히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총회적으로는 복음주의 에큐메니칼 신학이라는 교단적 신학의 정체성에 충실하기를 몇 번이고 다짐하며 살았다. 대사회 대정부 관련 수많은 메시지와 성명서에서 건강한 협력과 건전한 비판이라는 기조를 지키며 교회의 자존감을 지키려 애를 썼다. 재난이 상존하는 시대에 우는 자들과 함께 울자고 외쳤다. 진영논리로 양편에서 자기 편이 되어달라고 양팔을 끌어당겼지만 중심에 서는 통전적 신학을 견지하며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 해 동안 최선을 다한 여정이었지만 사역을 마치고 보니 아쉬움이 남는다. 그럴 수는 없지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더 잘해 볼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힘든 걸음을 하는 지체들을 더 많이 찾아가고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지방의 연약한 노회들을 돌아보며 희망을 나누고 격려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그리고 그동안 코로나19로 해외에 나갈 수 없었지만, 해외에서 힘들게 선교하는 자매교단 교회들과 선교사들을 돌아보며 한국교회의 영성을 나누며 격려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총회 내에 산적한 일들을 감당하느라 지쳐있는 직원들과 따뜻한 대화를 더 나누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바라기는 이번 새로운 회기의 총회는 내가 돌아보지 못했던 이러한 부분들을 따뜻하게 돌봐서 더 건강하고 따뜻한 총회로 발전하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되겠다.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린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동안 곱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은 여전히 희망을 찾고 있으며, 교회를 향해 희망인지 묻고 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약자들과 동행하는 일, 주님의 사역을 대신하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함으로 무너진 희망을 다시 세우는 일이 바로 우리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한국교회가 이제 하나 되어 아파하고 갈등하는 사회를 사랑으로 치유해야 한다. 그리고 위기 아닌 것이 없는 어두운 이 시대에 계속해서 복음의 빛을 비추고 희망을 재건해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새해 아차산 언덕에 진달래가 피면 장신대 입학 50주년이 된다. 2022년 한 해는 내 목회여정 50년 가운데 가장 소중했던 한 해, 가장 분주했던 한 해, 가장 영광스러웠던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오직 은혜! 오직 감사의 한 해로 남을 것 같다.
류영모 목사
<직전 총회장, 한교총 직전 대표회장, 한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