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을 열어보니 옷이 많기도 하다. 손 하나 대지 않고 올해를 넘기는 옷들도 부지기수다. 내가 입지도 못하고 남도 주지 않은 옷들이 나를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듯하다. 비단 옷뿐이겠는가? 우리 마음속에 복수하지도 않고 용서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묵혀두고 있는 인간관계가 어디 하나둘이겠는가?
인간이 살면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살림살이가 늘어나듯이 마음이 어지러워지며 복잡해지고 있다. 집안의 물건들도 그때그때 정리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시간을 엄청 허비해야 정리가 된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얽히고설킨 관계와 사건들은 제때 정리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머리가 복잡해지고 계산이 혼란스러워져서 잘 정리가 안 되는 것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잘못도 많이 하고 실수도 많이 하며 살았다는 것을 고백하는 데는 연말만큼 뻔뻔한 시간도 없다. 이제 다가오는 새해에는 좀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거짓말을 하기에도 연말만큼 적당한 시간이 없다. 잘 살겠다고 다짐하고 그렇게 살지 못해 남아 있는 위선의 찌꺼기들이 우리의 마음에 오랫동안 방치되고 퇴적되어 공해를 유발하고 있다.
한 해의 끝은 위선의 계절이다. 매년 연말에 똑같이 반복되는 반성과 후회와 미련 속에서 어느덧 양심의 가책이 무뎌진 우리의 모습에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으면 안 된다. 그저 한 해의 끝자락에서 또 해보는 습관화된 넋두리로서의 반성은 위선이다. 그 수많은 반성과 회개 뒤에 우리의 교회는 무엇이 바뀌었고 어떤 변화를 경험했는가?
올 연말만큼은 교계가 새롭게 출발하는 반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선거가 새로워지고 자리에 대한 탐심이 물러가고 고소와 고발로 치닫던 강퍅한 마음들이 성령세례를 받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거짓말 하는 자들이 손가락질을 당하고 진실을 말하는 입술이 인정을 받는 풍토가 조성되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네 편 내 편으로 편 가르기 하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존경을 받는 새로운 물결이 시작되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올 연말에는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새해에는 꼭 교회의 희망을 보았으면 좋겠다. 민족을 살리는 고급종교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강남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