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 존엄성을 지닌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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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질문한다면, 사람은 소중한 인격을 지닌 주체라고 답하겠다. 사람다운 사람은 인격을 지닌 사람이다. 인간은 명예가 있든지 없든지, 지식이 있든지 없든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잘났든지 못났든지 저마다의 고귀하고 존엄한 인격적 존재이다. 그렇다면 인격이란 무엇일까? 사람이 사람다운 자격을 갖는 것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인자하는 것이 인격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비인격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세상에는 참 많다. 비인격적인 행위는 자신의 비인격성이 표출된 것이다. 나는 유년 시절 어느 고아원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다. 300여 명의 고아가 생활하는 곳이었다. 그 고아원은 사찰을 빌려 시설로 사용하는 곳이었는데 추운 겨울에 난로불도 없이 살아야 했다. 어린 시절, 당시에 불어오는 겨울바람은 시베리아 벌판처럼 춥게 느껴졌다. 아침 식사는 찌그러진 양푼에 미군이 가져다준 소금을 반찬으로, 저녁에는 시래깃국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곤 했다.

미군부대가 가까이 있었기에 수시로 먹을 것을 가져다주곤 했지만 고아들에겐 거의 할당량이 들어오지 않았다. 고아들은 영양실조에 걸려 그 생활이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반면에 원장은 따뜻한 방에서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호사를 누렸다. 심지어 그 고아원장은 성직자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너무 견디기 힘든 생활이었다. 과연 이런 원장의 인격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 후 거지 생활을 하다가 경부선 기차의 종착역인 부산에 내려 맹학교에 들어갔다. 거기에는 이미 고인이 된 안 모라는 교사가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성숙되지 못한 인격을 가진 자로서 학생들에게 몹시 부당한 행위를 했다. 잠자는 학생을 수시로 깨워 시도 때도 없이 안마를 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행위는 학교에서도 금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노동 강요이며 요즘 말로 하면 엄청난 ‘갑질’이었다. 나 같은 경우에도 밤에 자다가 몇 번 부름을 받았지만 피곤해서 부름에 응하지 못한 때도 있었다. 불응한 다음 날이면 여지없이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면서 온갖 욕설을 마구 해댔다. 심지어 사회 생활 시간에 바다와 육지 면적의 비율은 7:3이라고 가르쳐 놓고 시험지에 그대로 쓰면 그것을 뒤집어서 8:2라고 하며 점수를 깎는 비윤리적인 교사였다. 낮에도 수업시간에 교실에 들어오면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당시 나는 그곳을 빨리 떠나야겠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을 도저히 선생이라고 부르고, 존경할 수가 없었다.

인격이란 사람으로서의 자질과 자격을 갖추고 존경받을 만한 품성을 말한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이란 말이 있다. 얼굴은 사람이나 마음은 짐승 같은 사람이란 뜻이다. 흔히 잔인하고 포악한 사람을 일컬을 때 이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 말은 옳은 말 같지 않다. 왜냐하면 짐승은 결코 잔인하거나 포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위 포식자들의 먹이 활동은 다른 짐승에게 결코 잔인한 행동이 아니다. 포식자가 다른 짐승을 잡아먹는 먹이 활동이나, 먹잇감이 되는 초식동물이 풀을 뜯어 먹는 먹이 활동은 똑같이 생존을 위한 방편이다. 짐승들은 절대로 죽이는 것을 즐기거나 필요 없는 먹이를 욕심으로 사재기하지 않는다. 상위 포식자라도 배가 부를 때는 먹잇감이 옆을 지나간들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수심’을 부정적 의미로 쓰는 것은 옳지 않다. ‘수심’보다 ‘인심’(人心)이 훨씬 잔인하고 포악할 때가 많이 있다. 비인격적인 사람의 ‘인심’은 ‘수심’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하고 포학하고 세상을 혼란하게 만든다.

사람은 인격을 가진 존재이다. 사람은 생명이 있는 존재다. 사람은 몇 푼의 돈으로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다. 같은 일만 반복하는 기계가 아니다. 사람은 지성과 신앙을 가진 고귀한 인격체이다.

사람이 지닌 인격은 금은보화를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을 존엄한 인격적 존재로 보고, 인격에 깊은 철학적 조명을 하기 시작한 것은 독일의 철학자 칸트였다. 그것은 칸트의 인격주의의 사상이요, 휴머니즘의 윤리이다.

휴머니즘이란 아름다운 인간미를 의미하는 것이다. 사람은 인간미가 좋아야 한다. 하와이 몰로카이 섬에서 한센병 환자를 위해 생명을 바친 성 다미엔 신부는 살아 있는 예수님, 성자라고 존경을 받았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닮은 그의 사랑이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었고, 인간미가 넘쳤기 때문이다. 그는 수천 명의 환자들 중에서도 냄새나고 고름이 흐르는 이들과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먹고, 그들에게 다가가서 어루만져 주고 위로하며 희망을 주었다. 그가 길을 지나갈 때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땅에 엎드려 감사와 존경을 표하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사랑이며, 칸트가 말하는 휴머니즘 윤리이다.

인격의 가치란 인간으로서의 인간다운 존엄성을 가지고, 세상의 낮은 자들을 사랑함으로 정신적, 육체적 따뜻함을 안겨 주어서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칸트에 의하면 존경이란 인격의 가치에 대한 감정이다. 사람만이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인격자만이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소중하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을 귀중하고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걸작품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가지고 존중해야 한다. 예수님 당시에 어린아이들은 무시당했고, 인격적 존재로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존중하고 하늘나라의 주인 자격을 부여하셨다. 또한 당시 죄인의 대명사였던 세리와 창기도 예수님은 인격적으로 존중하시고 친구로 삼으셨다. 사람은 누구나 인격적 존엄성을 인정받고 살 권리가 있다. 누구나 그 권리를 인정해야 자신의 인격도 존중을 받고 인격적 존재로 사는 보람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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