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부터 이은태 목사의 ‘재물이야기’ 연재가 시작된다. 이은태 목사는 뉴질랜드 유학 중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이후 뉴질랜드 최대 선교센터를 세워 17개 국제선교단체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이 목사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절대 불변의 물질의 법칙을 알리기 위해” 이 글을 쓴다고 밝혔다. <편집자 주>
나는 1980년대 후반에 잠시 강남의 부자 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살던 사근동에 살았는데 성수대교만 건너면 바로 강남의 대형 부자 교회가 있었다. 워낙 목사님의 설교가 유명해 그 교회에 잠시 다녔다. 재벌, 탤런트, 정치인 등 유명한 사람들이 주로 모인 교회였다.
그런데 매 주일 교회 입구 응달진 곳에 두 다리가 없는 40대 아저씨가 길바닥에 앉아서 찬송을 부르며 구걸을 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유심히 지켜보았지만 돈을 주는 사람은 보기가 쉽지 않았다. 간혹 교회 목사님 설교 테이프를 올려놓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당시 경제적으로 늘 빠듯했으나 그분을 외면할 수가 없어 매주 만 원씩을 꼭 드리고 왔다. 회사원인 나에게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몇 년간 그분을 늘 챙기다가 38세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뉴질랜드에 신학 공부를 하러 가게 되었다. 떠나기 한 달 전에 10만 원을 봉투에 담아 그분에게 드리고 앞으로 나의 계획을 알려 드리려 했다. 그런데 그 주일에 보이지 않았다. 다음 주도, 그다음 주도 나오지 않으셨다. 내 마음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그분을 만나지 못하고 간다면 앞으로 얼마나 나를 기다릴까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제 딱 한 주일의 기회밖에 없었다. 일주일 내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그분을 꼭 만나고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떠나기 전 마지막 주일이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분을 찾아갔으나 그날도 보이지 않았다. 그 참담함은 말로 할 수 없었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어떻게 해야 그분을 만나고 갈 수 있을까? 예배 내내 그분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 당시에 그렇게 간절히 기도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주님 제발 제발 그분을 만나게 해주세요.’ 예배 내내 눈물로 기도했다. 예배를 마치고 아픈 마음으로 교회를 나와 그분이 구걸하던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놀랍게도 멀리서 그분의 찬송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정신없이 달려갔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나는 그분의 두 손을 잡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이제 다시 만날 수 없을 거라고. 그리고 준비한 봉투를 그분에게 건넸다. 그분은 한참 동안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그분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울먹이며 내게 말했다.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아직도 그 손의 온기가 느껴진다.
지금도 가끔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오늘 이 뉴질랜드 땅의 기적은 그분의 눈물의 기도의 응답이라고.
이은태 목사
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Auckland International Church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