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行百里者半九十(행백리자반구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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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로운 결심을 한다. 그러나 결심을 끝까지 지켜 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왜 그럴까? 꾸준히 노력하려는 지구력(持久力)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꾸준한 노력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결과를 너무 초조하게 기다리기 때문이다. 일단 일을 시작하면 결과를 멀리 두고 끈기 있게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문 고사성어에 ‘行百里者半九十(행백리자반구십)’이라는 말이 있다. “100리를 가려는 사람은 90리를 절반으로 잡는다”는 말이다. 다시 풀어 말하면 “100리를 가는 사람은 90리를 가고 나서 이제 절반 쯤 왔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길을 갈 때에는 ‘처음 90리’와 ‘나머지 10리’가 맞먹는다고 보는 게 좋다. 무슨 일이나 처음은 쉽고 끝마무리가 어려우니 끝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위에 예시한 한문격언의 뜻을 조금 더 자세히 풀이해보자. 한자어 ‘​行(행)’은 원래 ‘네거리’라는 뜻이다. ‘네거리’는 네 개의 방향으로 반듯하게 갈라진 길이다. 여기에서 ‘行列(행렬/항렬)’이라는 어휘가 비롯되었다. 네거리에는 또한 ‘상점’이 많았으므로 ‘行’이라는 말 속에는 ‘가게, 상점’이라는 뜻도 들어 있다. 예컨대 ‘銀行(은행)’은 ‘銀(은)을 사고파는 상점’이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물건 값’을 말할 때, 이 물건은 ‘銀몇냥짜리’처럼 ‘銀’이 물건 값의 기준이었다. 또 ‘洋行(양행)’은 ‘서양식 상점’ 또는 ‘신식(新式) 상점’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네거리’에는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므로 ‘行’은 ‘가다, 돌아다니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여기에 나온 ‘行百里者半九十’의 ‘行’은 ‘가다’라는 뜻이므로 ‘行百里者’는 ‘백리를 가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半(반)’은 원래 ‘절반’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에서는 ‘절반으로 여기다’라는 동사의 의미로 풀이한다. ‘九十’의 뜻은 ‘90’이지만 앞에 ‘100리’라는 말이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90리’가 된다. 그러므로 ‘半九十’은 ‘구십 리를 절반으로 여기다’라는 말이다. 

이상의 설명을 정리하면 ‘行百里者半九十’은 ‘백리를 가려는 사람은 구십 리를 가고 나서 이제 절반쯤 왔다고 여긴다’가 된다. 이러한 자세를 가지면 100리를 다 갈 때까지 꾸준한 노력이 이어질 것이며, 눈앞의 결과에 대하여 그다지 초조하지 않게 될 것이다.  

1980년대 초에 미국의 관광명승지인 그랜드캐년(Grand Canyon)이 있는 애리조나에서 잠시 공부하던 때, 들은 이야기이다. 미국 전역뿐 아니라, 세계 각국 각처에서 그랜드캐년을 관광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오는데 목적지에 거의 이르러 다양한 자동차사고가 일어난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90%를 잘 달려오고 나서 나머지 10%가 남은 시점에서 방심한 나머지 사고가 다발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무심코 길을 걸어가다 커다란 지렁이가 작은 개미들에게 공격당해 무참히 잡아먹히는 모습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작은 것이 무슨 나의 적수가 되겠느냐고 방심하다가는 큰 코를 다치는 법이다. ‘방심’은 실로 나의 적(敵)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 행복과 성공에 가장 무서운 적은 ‘방심’이다. 자신의 힘이 강하다고 방심하지 않아야 한다. 강하다고 방심하다간 쉬이 무너지게 된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여유부리지 말아야 한다. 이만하면 되었다고 여유부릴 때, 누수(漏水)가 생긴다. 원숭이도 자신이 익숙한 나무에서 떨어지는 때가 있고 약삭빠른 고양이도 달리는 차에 치어 도로에서 죽는 모습을 보게 된다. 위용(偉容)을 자랑했던 대형 호화여객선 타이태닉(Titanic)호도 작은 빙산(氷山)에 부딪혀 바다에서 침몰했다. 

믿는 이들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방심하지 말고 끝까지 조심해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교만하거나 방심해서는 안 된다. 또 우리는 한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크게 실수 하는 경우를 본다. 마음에 분노가 일어날 때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짧은 글이 있다. “그대 마음속에 분노가 고여 들거든 우선 말하는 것을 멈추십시오. 분노가 심하게 치밀어 오를 때에는 우리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맞는 말씀이다. 우리가 ‘분노’ 때문에 친구와 신앙과 하나님을 잃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다시 우리에게 새해가 찾아왔다. 금년 한 해도 나의 신앙생활이나 내가 추진하는 일에 누수가 생기지 않도록 꾸준히 그리고 성실하게 ‘페달(pedal) 밟기’를 멈추지 말아야 하겠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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