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입은 사람의 신분과 지위를 나타낸다. 지위와 관직에 따라 옷의 재질과 색깔이 달랐던 때도 있었다. 흰옷을 즐겨 입은 한민족을 다르게는 백의민족(白衣民族)으로 부른다. 최남선은『조선상식문답』(1946)에서 우리 민족이 흰 옷을 입게 된 유래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대개 조선 민족은 옛날에 태양을 하느님으로 알고 자기네가 하느님의 자손이라고 믿었는데 태양의 광명을 표시하는 의미로 흰빛을 신성하게 여기고 흰옷을 자랑삼아 입다가 나중에는 온 민족의 풍습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조선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고 태양을 숭배하는 민족은 모두 흰빛을 신성하게 알고 또 흰옷을 입기 좋아하니 이를테면 이집트나 바빌론의 풍습이 그렇습니다.” 한민족이 흰옷을 즐겨 입는다는 기록은 고대 중국의 문헌에도 남아 있다. 3세기에 편찬된 중국사서 《삼국지》 위서 동이전(東夷傳)에 기록되어 있다. 부여의 “재국의상백(在國衣尙白)”이라든지, 변진(弁辰)의 “의복정결(衣服淨潔)”이라든지, 고구려의 “기인결청(其人潔淸)” 따위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고려 말 충렬왕은 백의금지령(白衣禁止令)이 내렸으나 잘 시행되지 않았다. 흰옷이 상복과 비슷하다 해 조선의 태조 7년, 태종 원년, 세종 7년, 연산군 11년, 12년, 인조 26년, 현종 11년, 12년, 17년, 숙종 2년, 17년과 영조 때, 백의금지령을 내리고 파란색 옷을 권장했으나 효과는 신통치 않았다. 백의(白衣)에는 순수와 청결, 더러움을 싫어하는 한민족의 자존심이 함의되어 있다. 1894년 일본의 영향력 아래 추진되었던 갑오개혁은 흰옷은 세탁을 자주 해야 하는 등 불편하다고 해 색깔 있는 옷을 입을 것을 권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흰옷을 즐겨 입는 풍습이 줄어들지 않자 1906년, 아예 흰옷 입는 것을 법령으로 금지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한국인이 흰옷을 입는 까닭을 왜곡 선전했다. 도리야마 기치(鳥山喜一)는 그의 ‘조선백의고(朝鮮白衣考)’란 논문에서 고려가 몽고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망하자 망국의 슬픔 때문에 백의를 입기 시작했다고 왜곡했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도 백의민족의 유래를 “이 민족이 겪은 고통, 많은 역사적 경험” 때문이라 주장했지만 일제 강점기 흰옷은 조선인의 자주성을 나타내는 항일 정신의 상징이었다.
1894년 이래 네 차례나 우리나라를 다녀간 영국의 이자벨라 비숍((Isabella Bird Bishop) 여사는 “한국 빨래의 흰색은 항상 나에게 현성축일에 나타난 예수님의 옷에 대해 성(聖) 마가가 했던 ‘세상의 어떤 빨래집도 그토록 희게 할 수 없다’는 말을 기억하게 한다”고 서술했다. 오페르트(Oppert,E.J.)는 그의 《조선기행》에서 “옷감 빛깔은 남자나 여자나 다 희다”고 말하고 있으며, 라게리(Laguerie,V.de)도 “천천히 그리고 육중하게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하얀 옷을 입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19세기 말 조선을 방문한 다수의 서양 사람들은 조선 사람들이 흰옷을 주로 입고 있는 것에 놀랐다. 여인들이 냇가에 모여앉아 무명으로 만든 옷을 눈부시도록 희게 빨고 있는 모습을 본 《아리랑》의 저자 헬렌 포스터 스노우(필명 Nym Wales,)는 이상주의와 순교자의 민족이 아니라면 이처럼 깨끗한 청결을 위해 그토록 힘든 운동을 감내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성경에서 흰 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순결을 상징한다. 부활(변화)하신 예수 그리스도(마 17:2, 28:3), 천사(요 20:12, 행 1:10)들이 입는 의복이 흰옷이다.
고영표 장로 (의정부영락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