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는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 일가가 그곳에 몰아닥친 흉년을 피해 사해 동편 모압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곳에서 불행하게도 가장이 되는 엘리멜렉은 죽고, 두 아들은 모압 여인과 결혼하게 된다. 가족의 불행은 계속되어 두 아들도 그곳에서 죽고 만다. 이제는 시어머니 나오미와 두 며느리만 남게 되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그쳤다는 소식을 듣고, 나오미는 떠나온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나선다. 과부가 된 젊은 며느리들도 뒤를 따른다. 나오미는 자기를 따라오는 두 며느리에게 자기를 따라오지 말라고 간곡히 만류한다.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만류하는 말을 언뜻 들으면 마치 횡설수설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오미는 구약시대 널리 행해졌던 ‘시형제 결혼제도’를 언급하며 며느리들을 만류하고 있는 것이다. ‘시형제 결혼제도’는 남편이 자녀 없이 사망한 경우, 과부가 된 여인은 시(媤)형제와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죽은 남편의 대가 끊이지 않게 이어주는 제도이다.(신 25:5이하) 이를 염두에 두고 룻기 1:11-13에 기록된 나오미가 두 며느리를 만류하는 말을 쉽게 풀어본다.
“만일 나오미 내게 죽은 두 아들 외에 생존한 다른 아들들이 있다면, 과부가 된 두 며느리들은 ‘시형제 결혼제도’에 따라 그 아들들과 결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오미 내게는 죽은 두 아들 외에 다른 아들은 없다. 내 태중에 낳을 아들도 물론 없다. 또한 늙은 내가 재혼을 한들, 이제 아이를 가질 수도 없다. 극단적으로 가정해서 오늘밤에 내가 새 남편을 맞아 아들을 낳는다고 해도, 낳은 아들이 장성해서 너희들 며느리들과 결혼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두 며느리들은 나를 따라오지 말고, 너희들 고향 모압 땅에 남아서 재혼하고 행복하게 살아라” 하는 말이다.
나오미의 말을 듣고 첫째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입맞춤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둘째 며느리 룻은 나오미를 계속 따라갔다.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리이다.” (1:16) 모압 여인 룻이 이스라엘 시어머니에게 하는 말에는 이방인(Gentiles)과 이스라엘 사이의 간격이 전혀 없다. 이방인도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계속해서 룻은 의미있는 말을 한다.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Yahweh)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1:17) 놀랍게도 모압 여인 룻은 모압 사람들이 섬기는 ‘그모스’ 신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웨)의 이름으로 상벌을 언급한다. 룻이 모압 사람이 섬기는 ‘그모스’를 버리고 시어머니 나오미가 믿는 ‘여호와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한정된 폐쇄적인 것이 아니라, 모압 사람이나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다는 ‘만민주의’를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는 보리 추수 계절이었다. 룻은 밭에 나가 떨어진 이삭을 줍는 것으로 나오미와 같이 생계를 이어갔다. 룻이 이삭을 줍는 밭의 주인은 죽은 시아버지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였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