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날씨가 쌀쌀한 봄날, 아동복 가게에 허름한 옷차림의 아주머니가 여자아이와 함께 들어왔습니다. “우리 딸이예요, 예쁜 티셔츠 하나 주세요.” 엄마는 아이에게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고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아무거나 괜찮아요, 엄마가 골라주시면 다 좋아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옷을 고르면서 주고받는 두 모녀의 대화에 정이 넘쳐났습니다. 두 모녀는 만 원짜리 티셔츠를 사가지고 나갔지요. 그런데 얼마 뒤 아이가 그 옷을 들고 와서, “저, 죄송한데요. 이거 돈으로 돌려주시면 안 될까요?” “왜 엄마가 사주신 건데 무르려구? 엄마한테 혼나면 어쩌려구?” 나는 약간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말했습니다.
아이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하는 말이, “사실은 엄마가 시장에서 좌판 야채장사를 하셔요. 하루 종일 벌어도 만원을 못 버실 때도 있어요. 엄마한테 미안해서 이 옷을 못 입겠어요.” 순간 내 코끝이 찡해 왔습니다. 고사리 손의 어린 아이의 마음씨가 하도 예뻐서… “그래, 예쁜 생각을 하는구나. 이 돈은 다시 엄마 갖다 드려라. 그리고 이 티셔츠는 아줌마가 네 마음씨가 예뻐서 네게 선물로 주는 거야.” 하며 작은 청바지와 함께 예쁘게 싸서 아이 손에 들려주었습니다.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그래 마음씨가 예쁘니 공부도 잘하겠구나. 공부 더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 바란다.”
그 날은 “봄을 가슴에 안고 온 아이”의 예쁜 마음 때문인지 종일 손님도 많았고 내 기분도 상쾌한 봄 날씨 그대로였습니다. 다음 날, 여자아이 엄마가 봄나물을 한 봉지 가지고 오셔서 “얘가 무얼 사주면 늘 그런다오.” 하시면서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착한 딸 두셔서 좋으시겠어요. 아주머니가 부러워요.” “예, 고생하는 보람이 있다오. 이집도 복 받으시라고 내가 기도하겠어요.”
세상이 온통 혼탁하고 제 생각만 하는 듯한 현실 속에서 이런 아름다운 글을 대하다보니 마음이 아주 훈훈해 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봄을 가슴에 안고 온 아이”의 마음도 예쁘지만 이를 격려해주는 가게주인의 마음도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예전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태양과 바람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 벗기기” 내기를 했다는 이야기나 나옵니다. 바람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내가 한번 큰바람을 일으키면 저 나그네의 외투는 당장에 날아가 버리지!” 그리고는 큰바람을 불어댔습니다. 바람이 강하면 강할수록 나그네는 단추를 확인하고 두 손으로 옷이 벗겨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는 바람에 외투를 벗기는 데 실패하고 맙니다. 이번에는 태양이 웃으면서 따뜻한 열을 내려 쏟으니 나그네는 “아니 날씨가 왜 이렇게 더워?”하면서 외투를 벗어 들었다는 내용입니다.
교육학 용어 중에 『하알로우(Harlow) 실험』이란 게 있다고 합니다.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동물 심리학자인 ‘하알로우’ 교수는 《인공 엄마(Artificial Mother)》라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갓 태어난 원숭이를 ‘헝겊으로 만든 엄마원숭이’와 ‘철사로 만든 엄마원숭이’ 앞에다 데려다 놓고 아기원숭이가 어느 엄마를 더 선호하느냐에 대한 실험이었습니다. 철사로 만든 엄마 원숭이에게는 가슴에 우유병까지 매달아주었습니다. 아기 원숭이는 제왕절개로 태어났기 때문에 엄마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기 원숭이가 놀 때는 부드럽고 푹신한 ‘헝겊엄마’ 옆에서만 놀았습니다. 단지 배가 고플 때만 ‘철사엄마’에게 가서 우유를 빨았습니다. ‘하알로우’교수는 실험 결과를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동물들도 본능적으로 부드럽고 온화한 것을 원한다. 모든 동물은 포근하고 따뜻한 것을 좋아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합니다. 같은 재능, 같은 기술,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사회에서 원하는 사람은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성품이 따뜻하며 부드럽고 온유한 사람에게 친구가 있고, 이웃이 있기 마련입니다. 온유한 마음이 있는 곳에 훈훈한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건전한 사회생활이 있습니다.
며칠 전에 입춘(立春) 절기가 지났습니다. 바야흐로 우리 눈앞에 따뜻한 봄이 어른거립니다. 사람마다 따뜻하고 온유한 마음을 품어서 우리 사회가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충만해지며 화평을 이루게 되었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