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내비(Navigation)가 발달해서 처음 가는 지역에서도 내가 가는 곳이 어디며 어떻게 가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60여 년 전에는 이런 마술 같은 일은 꿈도 꿀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여름방학에 친구 4명이 배낭을 메고 당시에 유행하던 무전여행을 떠났다. 충청도 속리산으로 갔는데 물론 사전에 지도를 보고 계획을 세워 시골길을 열심히 걸어갔다. 무더위에 땀은 흐르면서 지쳐갔는데 목표했던 곳이 나오지 않았다. 혹시나 길을 잃었나 걱정되어 마침 농사를 짓고 있던 농부에게 길을 물으니 손으로 앞을 가르키며 ‘저 길로 가면 된다’고 대답한다. ‘얼마나 가면 되느냐?’고 물으니 ‘조금만 가면 된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런 여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조금만’이라는 대답이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 낱말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은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익혀지는 삶의 지혜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다만 이렇게 편안하고 쉽게 ‘조금만 가면 된다’라는 대답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을 닥쳤을 때에도 ‘조금만 지나면 해결된다’라는 진리와 연결이 되곤 했다. 이렇게 ‘조금만’이나 때로는 ‘거의 할 뻔했다’라는 말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항상 겪으면서 잘 해결해야 하는 말이다. 시험에 거의 붙을 뻔했다라든가 누구를 사랑할 뻔했다라는 말은 우리를 정말 힘들게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할 뻔했다’라는 말을 잘 이해하고 이겨나가는 것이 또한 우리가 세상을 잘 살아가는 지혜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때로는 남이 하는 악의 없는 거짓말에도 잘 적응해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을 잘 살아가는 요령이 된다.
어떤 사람이 큰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을 받게 되었다. 여러 가지 조직검사를 한 결과 상당히 중한 병으로 판명났지만 호들갑을 떨며 환자에게 커다란 불안감을 줄 필요가 없다고 의사는 판단했다. 혹시 오진일 경우도 있고, 환자의 의지와 치료방법에 따라 충분히 완쾌될 수도 있다고 여겨, 환자를 안심시키고 치료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치료를 하는 중에 가능하면 ‘잘 하셨네요. 조금씩 치료의 효과가 있네요’ 등의 격려의 말을 하면서 치료하는 것이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때로는 약간의 악의 없는 거짓말조차 병이 호전하는 일에 기여하기도 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고난의 역사가 이어지는 우리 역사에서 큰 힘이 되는 시조가 있다.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우적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이은상)」 이 시조는 국토 분단과 민족 분열이라는 조국의 역사적 현실을 민족애(民族愛), 조국애(祖國愛)에 찬 눈으로 바라보면서 민족 지상의 과업인 조국 통일을 간절히 염원한 애국시(愛國詩)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경제 부흥과 개인의 권리 증진을 위해 다른 것은 제쳐두고 앞만 보며 숨 가쁘게 달려온 결과가 고지를 앞두고 지쳐서 넘어져 있는 모습이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는 많은 숭앙을 받기도 하지만 오늘의 우리나라의 정치적인 현실이나 사회 전반에 걸쳐 흐르는 국격에는 수습하기 어려운 커다란 혼란이 일어나고 있음도 사실이다.
이럴 때 이런 혼란을 극복하고 제자리를 찾아가게 인도해야 하는 책임이 우리 「기독교」에 있음은 자명하다. 우리가 감당해야할 역사적인 사명이 요구된다. 고지가 바로 저기에 있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