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오신 지 2천여 년 만에, 이 땅에 복음이 전해진 지 백 수십여 년 만에 또 하나의 새로운 불길이 타올랐다. ‘청소년주일’이 작년 9월 제107회기 총회에서 제정되어 오는 2월 26일 첫 번째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필자가 사뭇 과한 느낌으로 표현한 이유는 청소년주일의 제정 및 시행이 그만큼 오랜 바람이었고, 이는 교회학교의 다음 세대 청소년 교육에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전국의 모든 교회가 마음을 합해 청소년을 위해 기도하고, 수고하는 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며 청소년주일을 지키는 모습은 청소년들의 가슴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심고자 하는 사명의 웅장한 산줄기에서 만난 첫 번째 봉우리에 올라선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시작으로 앞으로 이어지는 여러 험준한 산봉우리도 기쁨과 감격으로 올라서게 될 것이다. 이날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드러난 교회학교의 위축이 잠복해 있던 여러 문제점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고, 그 타개책과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날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한국교회의 미래를 또렷하게 마음에 새기게 될 것이다. 이것이 청소년주일을 제정하고 지키는 가장 큰 의미라 하겠다.
그렇지만 청소년주일을 제정하고 지키는 것만으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회학교, 그중에서도 청소년 교육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걱정은 도처에서 메아리친다. 인구절벽의 시대에 학생 수가 급감한다, 급격한 미디어와 정보통신의 발전으로 교회가 세상을 못 따라간다, 교회학교의 가장 큰 적은 학원이다, ‘개독교’라는 멸칭이 통용되듯 한국교회의 대 사회적 신뢰도가 급격하게 추락했다, 승자독식과 치열한 경쟁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의 특성 및 통칭 MZ세대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 앞에 기독교적 문화와 복음의 본질은 축소되었다 등등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가리지 않는 분석은 차고 넘친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점의 대안을 제시하라는 요구 앞에는 모두가 잠잠해지거나 거창한 담론만을 펼치곤 한다.
어떻게 하면 교회학교 중·고등부가 되살아날 수 있을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빠르고 탄탄한 길은 교회학교 선생님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어느 한 시대라도 교회학교가 어렵지 않은 때가 있었는가? 복음이 넘치고 교회가 세상을 정신적으로 이끌던 시대에는 인적, 물질적 자원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언제나 입시 경쟁은 극에 치달았고,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논리는 여전히 치열했으며, 많은 기독교인이 지식인으로서 탄압을 받거나 혹은 권력과 자본의 하수인으로서 비난을 받았다. 이단은 늘 들끓어 교회를 오해받게 했고, 교회를 생활의 도구로만 여겼던 사람들의 비뚤어진 행동은 교회를 지탄의 대상으로 종종 전락시켰다. 이러한 숱한 어려움을 꿋꿋이 이겨내며 교회학교를 지켜낸 가장 중요한 요인은 선생님들의 믿음과 헌신과 자긍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교회학교 중·고등부에는 선생님이 태부족하다. 교사 특히 중·고등부 교사는 대표적인 3D 업종이라는 자조가 넘친다. 위에 언급한 여러 외적인 어려움에 맞서 이끄는 리더십과 섬기는 리더십을 한 몸에 갖춰야 하는 교사는 늘 바쁘고 힘겹다. 안타깝게도 표시는 나지 않고, 많은 경우 교회의 지원은 늘 부족하다. 담임목사님들은 교회학교의 중요성과 전폭적인 지원을 외치지만 구호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한 해를 마칠 때 이러저러한 이유로 떠나보낸 제자들을 떠올리며 교사들의 가슴은 먹먹해진다. 해마다 교사를 모시는 일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여기는 교육부장들의 모습을 쉽게 보곤 한다.
교사가 즐거워야 학생이 살고 학생이 살아나야 교사가 즐겁게 섬길 수 있다. 이러한 선순환의 나선형 구조가 단단히 자리 잡아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속칭 ‘케미’가 맞을 때 튼튼하고 정겨운 교회학교의 울타리가 마련되고 우리의 어린 양들을 지키고 키워낼 수 있다. 교사와 청소년들이 복음을 들고 예수를 만나고, 예수의 향기를 품고 예수를 전하고, 그렇게 만난 청소년들이 다시 복음을 들고 예수를 만나고 예수의 향기를 전한다면 ‘미전도 종족 수준의 청소년 복음화율’이라는 수치는 차츰 강하고 뚜렷하게 극복될 것이다.
교회학교가 한국교회의 미래라는 평범한 진리가 관념만이 아닌 행동으로 체화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의사 결정 구조를 독식하다시피 하는 50~60대 남성들의 주된 관심이 교회학교와 교사들의 현실과 비전을 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7)는 말씀을 붙잡고 섬기는 교사들이 ‘보다 잘 심고, 보다 물을 잘 주기’ 위해 기도하고 기쁘게 헌신할 수 있는 새로운 기틀을 다지는 것, 이것이 ‘청소년주일’ 제정이 우리 한국교회에 선물한 새로운 역할인 것이다.
신점철 장로
<교회학교 중·고등부전국연합회 직전회장, 울산호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