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족속과 결혼하는 것을 큰 죄악이라고 정죄했던 에스라나 느헤미야가 ‘룻기’를 읽으면 가슴을 치고 통탄할 것이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사람과 암몬 사람과는 영원히 절연하며 살아야 하는 기피 족속들로 규정하고 있다. 그에 반해 룻기는 모압 여인 룻이 베들레헴 사람들의 환영과 축복을 받으며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우월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에 반해 룻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모압인의 구분이나 차별이 없다는 ‘만민주의’를 대표하는 책이다. 이렇게 구약성경 안에는 타민족을 배타하는 극단적 ‘이스라엘 우월주의’와 지상만민을 신앙 안에서 포용하는 ‘만민주의’가 공존하고 있다. 구약성경 안에서 ‘신학적’ 양대 산맥과 같은 ‘이스라엘 중심주의/우월주의’와 ‘만민주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서 신약성경의 ‘만민주의’의 승리로 그 완성에 이른다.
이제 룻기가 보여주는 구약의 만민주의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베들레헴에 엘리멜렉 일가가 살고 있었다. 가나안 땅에 큰 흉년이 들자 엘리멜렉과 부인 나오미와 두 아들은 기근을 피해 모압 지방(사해 동편 지역)으로 이주해 갔다. 불행하게도 그곳에서 엘리멜렉은 죽고 말았다. 나오미는 두 아들을 그곳의 모압 여인과 결혼시켰다. 일찍이 아브라함은 며느리감을 구하기 위해 집안의 집사를 그의 혈족이 살고 있는 밧단 아람 지역으로 보내어 리브가를 구해온 일이 있었다. 나오미는 모압 지역에서 과히 멀지 않은 베들레헴으로 사람을 보내서 두 아들의 신부감을 구해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오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모압 여인을 며느리로 맞아들였다. 모압 사람에 대한 차별 의식이나 거부감을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집안에 불행이 겹쳐, 나오미의 두 아들마저 모압 지역에서 죽고 만다. 이제 과부가 된 세 여인들만 남게 되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나오미는 떠나온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나선다. 그때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자기를 따라오지 말라고 극구 만류한다. 이에 첫째 며느리는 발길을 돌렸으나, 둘째 며느리 룻은 계속 나오미를 따라오며 말한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룻 1:16) 룻은 모압 여인이다. 모압 사람들이 섬기는 신은 ‘그모스’라는 신이다. 룻은 자기 동족이 섬기는 그모스 신이 아니라 시어머니 나오미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르겠다는 말이다. 사실, 룻은 이미 ‘여호와 신앙’으로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이는 계속되는 룻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룻 1:17) 룻은 상과 벌을 내리는 신은 모압의 신 그모스가 아니라, 여호와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이는 룻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 들어와 있음을 말해준다. 룻기는 ‘여호와 신앙’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방인 모압 사람에게도 그 문이 열려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누구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만민주의를 말해주는 것이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