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죽기 위해 태어난다. 그러나 영원히 살기 위해 죽는다.” 이 말의 역사적 배경이 그 유명한 《마사다 항쟁》입니다. 이스라엘 남부에 위치한 ‘마사다(Masada)’는 이스라엘의 국립공원 겸 성지입니다. 기원전 63년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아오던 유대인들은 서기 66년부터 70년 사이에 독립전쟁을 벌입니다. 그러나 서기 70년 예루살렘은 마침내 로마군에게 점령당합니다. 성전은 완전히 파괴되고 유대인 110만 명이 살육(殺戮)을 당합니다.
이때 유대인 중 일부 열심당원들이 가족과 함께 사해(死海) 인근에 있는 해발 450m의 “마사다 요새”로 퇴각하여 최후의 항전을 계속합니다. 로마의 최정예 부대인 제10군단은 ‘마사다’의 함락을 위해 2년 동안이나 공격을 시도했지만 좀처럼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방이 절벽인 천혜(天惠)의 요새(要塞)인데다가 비록 소수이지만 유대인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실바(Silva) 장군’은 최후의 수단으로 저항 세력의 동족인 유대인 노예들을 앞장 세워 요새 서쪽에 흙으로 경사로(傾斜路)를 쌓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공사가 끝나고 다음 날이면 로마군의 총공세가 예고된 상황에서 유대인 지도자 ‘엘르아살 벤 야일(Eleazar Ben Yair)’은 그날 밤 960명의 동지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마지막 연설을 합니다.
“형제들이여, 이제 날이 밝으면 우리의 저항도 끝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분명한 행동으로 우리의 신앙을 입증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아직 자유가 있을 때, 우리 스스로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합시다. 우리의 아내들이 저들에게 욕보임을 당하지 않은 채로 죽음을 맞게 합시다. 우리의 자녀들이 노예가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죽음에 이르도록 합시다.”
이 비장한 연설에 모두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자살을 금지하는 율법 규정에 따라 남자들은 집에 돌아가 처자식과 이별의 포옹과 키스를 나눈 뒤, 가족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습니다. 남자들만 남게 되었을 때에 제비로 뽑힌 10명이 나머지 남자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리고 제비로 뽑힌 한 명이 나머지 아홉 명을 죽인 후, 자신은 칼에 엎드려 자결(自決)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로마군이 성문을 부수고 쳐들어왔을 때, 그들은 허망한 승리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마사다 요새”는 정복했지만 유대인들을 이기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국방장관이었던 애꾸눈의 ‘모세 다얀(Moshe Dayan, 1915~1981)’ 장군은 이 스토리를 이스라엘 군인정신의 상징으로 여기고 신병훈련의 마지막 코스를 언제나 이곳 ‘마사다’에서 끝마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마사다’에는 젊은 이스라엘 군인들과 이곳을 방문하는 이스라엘 청소년들이 외치는 “Masada! Never Again!”이라는 함성이 동서남북에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즉 “마사다의 비극은 다시는 없다!”라는 말입니다.
지난 1998년 이스라엘 독립 50주년을 맞이하여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종신지휘자 ‘주빈 메타’의 지휘로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의 교향곡 제2번 ‘부활’을 이곳 “마사다 요새”에서 연주한 일이 있습니다. 80여 분에 걸친 전곡 중 “죽은 후 부활하여 신에 의해 영생이 주어질 것”이라고 외치는 마지막 휘날레 합창 부분을 듣다 보면 오래전 이곳 ‘마사다’에서의 사건이 눈앞에 그려지면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벅찬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예전에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 영어참고서에 나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조국을 떠나 타국에서 사는 유대인들은 주로 과일장수, 생선장수, 보석장수를 하고 집이나 땅 같은 부동산 장수는 결코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신이 세계 어디에서 장사를 하건 조국이 부르면 하루 이틀 사이에 팔던 물건을 모두 처분하고 즉시 조국으로 달려가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1967년에 있었던 이른바 《이스라엘의 6일 전쟁》이 유대인들의 애국심의 실체를 증명해 주었습니다. 당시 “6일 전쟁” 중에 전투기를 몰다 전사한 여성 조종사가 만삭(滿朔)의 임산부였다는 사실이 전 세계를 놀라게 했었지요. 유대인들의 조국애와 민족애를 듣고 보자면 온 몸에 소름이 돋는 전율(戰慄)을 느끼게 됩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