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에는 부활절 전후로 사순절과 오순절이 자리하고 있는데 사순절은 부활절에 앞서 지키는 절기이다. 사순절의 40일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심을 본받고자 함에서 설정되었다. 40일간 예수님의 수난받으심과 십자가 죽음을 깊이 묵상하며 회개와 절제, 금욕과 자선으로 부활절을 맞이하는 초대교회에서 물려받은 전통이다. 하지만 초대교회의 사순절은 오늘날과 달리 세례 후보자들을 위한 집중 신앙교육에 중점을 두고 지켜졌다. 이 집중 신앙교육은 세례 후보자들 가운데 신앙과 삶의 검증과정을 통과한 자들만이 참여했다. 그들에게는 일반적인 세례 후보자들을 일컫는 ‘카테쿠멘’ 대신 ‘빛의 조명을 받은 자’ 또는 ‘선출된 자’란 호칭이 주어졌다. 부활절에 세례를 베풀듯이 사순절에 세례자를 위한 집중교육의 강화가 필요하다.
사순절의 영성은 ‘줄임’과 ‘늘임’으로 정의할 수 있다. 전자는 특정 음식이나 행동의 자제나 포기라면, 후자는 나눔과 섬김이다. 부연하면 참회와 고난과 절제를 택하고, 교만과 탐욕과 분노를 버리며 채식과 절식과 금식을 벗하는 것은 줄임에 포함된다. 반면에 일상적 지출 습관을 포기하는 대신 자선이나 기부, 친절한 행동과 자원한 섬김은 늘임에 포함된다. 사순절 지출 습관의 포기 관행은 사회적 약자와 나그네를 환대했던 초대교회의 전통에 뿌리가 닿아있다. 사순절에 일상적인 소비 습관의 포기와 이를 통한 나눔은 그간의 소비 생활과 소비의 줄임을 통한 나눔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끼치지 못함에 대해 반성할 기회를 얻는다. 곧 줄임을 통한 나눔이 러시아의 침략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이나 지진으로 고통받는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이재민들에게 전달되면 사랑의 선물이 될 것이다.
최근 사순절에 미디어 금식과 탄소 금식 운동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사순절에 전통적으로 행해진 금식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의 적용이다. 개인의 마음이나 지구에 해를 끼치는 습관이나 행위를 삼가고 마음의 결심을 몸의 섬김으로 실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미디어 금식은 텔레비전, 소셜 미디어, 뉴스 웹사이트, 나아가 이메일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미디어 소비를 중단하거나 사용 빈도를 줄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디어의 끊임없는 자극과 산만함에서 벗어나 마음의 휴식과 더불어 하나님과의 친밀성 강화에 집중하게 된다. 정보와 엔터테인먼트의 끊임없는 흐름에서 벗어나면 자기 성찰의 기회를 얻게 되고, 새로운 집중력과 명료성을 끌어낸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만남의 깊이를 더할 수 있게 되며, 기도와 묵상에 활용함으로 생명과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된다.
탄소 금식은 석유와 가스, 전기 에너지 소비, 플라스틱 제품 사용, 육류와 가공식품의 소비와 같이 탄소 배출을 초래하는 활동이나 소비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금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땅과 물을 살리고, 친환경 먹거리 생산을 장려함으로 기후 변화의 해로운 영향을 완화함과 동시에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나아가 하나님께 받은 ‘문화 명령’(창 1:28)을 책임감 있게 수행함으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 보전의 사명을 감당한다. 몰트만이 말했듯이 “땅을 정복하라”라는 성경의 표상은 신학의 전통이 지난 2000년 동안 가르쳐 온 “땅의 통치”와는 무관하다. 땅을 정복함은 억압과 착취와 파괴와 같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권과 거리가 멀고,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가꿈”과 “돌봄”이기 때문이다.
미디어 금식과 탄소 금식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목표와 지침의 설정이 중요하다. 미디어 금식의 경우 개인은 특정 시간에만 미디어를 사용하거나, 한 주간 또는 사순절 기간 중 특정 기간이나 40일을 완전히 금하는 등의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달성할 수 있다. 탄소 금식의 경우 개인은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이용하고 걸어서 다니고, 플라스틱이나 일회용품의 사용을 줄이거나 금한다. 가정과 교회에서 세탁이나 청소 시 화학 세제 대신 천연 세제를 사용해 손수 섬김을 실천한다. 미디어 금식과 탄소 금식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자리잡으면 개인과 지구에 많은 이점을 제공하게 된다. 미디어 사용과 탄소 배출에서 휴식을 취할 때 개인적으로 더 건강한 마음과 신앙을 견지할 수 있을 것이며, 이웃 간에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고,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김휘현 목사
<동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