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원하며 그 행복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바쁘게 활동하고 있지만, 행복은 고사하고 삶의 의미를 망각한 채 무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때가 너무나 많다.
진정한 행복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대부분의 인간들은 진정한 행복은 많은 재물을 소유하는 데서 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들은 재물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틈만 있으면 남을 속여서라도 치부를 하려고 안달을 부린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힌다. 우리들은 에이브러햄 링컨이 주장한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도 있고, 일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말씀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결국 진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이다. 그럴 경우 행복은 고사하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불행의 늪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인간들은 정치권력을 장악하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지방 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 더 나아가 대통령 출마자들은 선거 때가 되면, 금전 살포를 교묘하게 해 유권자들을 매수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 부정선거가 들통이 날 경우, 당선 무효가 된다든가 관련자들이 감옥행을 자초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명예를 소유하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명예를 소유할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가 금력이나 권력에 의해 명예를 소유할 경우,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예컨대, 명예박사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가 명예박사를 받는다든가, 어떤 분야에 전문성의 자격이 이르지 못한 사람이 금전 공세로 심사위원들을 매수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면, 그런 인간의 가짜박사 학위 취득 행위는 행복이라기보다는 해당자의 일생을 불행에 사로잡히게 할 것이다.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행복이란 부와 권력이나 명예의 소유에 있지 아니하고 영혼(psyche)의 완성에 있다”고 그의 제자 플라톤이 증언하고 있다. 또한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은 그의 ‘참회록(Confession)’에서 “썩은 영혼의 생활 속에서는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그의 명상록 ‘팡세(Pensees)’에서 “참다운 행복은 마음 전체의 영혼(靈魂) 가운데 내재한다”고 했다. 또한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라고 했다. 이상의 견해들은 진정한 행복을 물질적 만족보다 영혼의 만족에서 찾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과 증오라는 두 얼굴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자신의 마음 속에 남모르는 기쁨이 샘솟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자신의 건강이 나빠질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불행을 가속화 시키는 불행의 씨앗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가는 곳마다 평화를 창조하고 사랑의 꽃씨를 심는다면 자신의 행복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행복을 창조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심은 한이 없다. 소유를 가지면 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권력을 한번 잡으면 또 잡으려고 부단히 과욕을 부린다. 그런데 인간의 행복은 탐욕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고, 이와 반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탐욕을 부리는 것만큼 우리의 행복은 감소할 것이다. 따라서 적은 것을 가지고도 자족할 줄 알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에 행복은 우리의 마음속에 절로 생기게 될 것이다. 우리는 황금만능시대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인형 장로
– 영세교회 원로
– 강원대 명예교수
–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