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이야기] 평생 전쟁고아·장애인을 돌본 할머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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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순(92) 할머니는 거제도 사회복지법인 애광원(愛光院) 원장으로 1952년 설립해 전쟁고아들을 돌보다가 1978년부터는 지적장애인까지 돌보고 있다. 지적장애인은 “민들레 집”이라고 했는데 민들레는 밟아도 다시 살아 꽃을 피워 생명이 그렇게 귀하고 소중하다는 뜻이다. 본래의 꿈은 ‘농촌계몽운동’ 지도자로 1949년 이화여자대학을 졸업하고 개성에 있던 고려여자 상업학교에서 교사를 하다가 1950년 4월에 서울 모 고등학교 영어교사와 결혼을 했다. 6월에 임신초기로 친정에 잠시 머물렀으며 남편은 서울로 갔는데 6.25전쟁이 일어나 남편과 헤어져 그 후 소식에 의하면 미국에 가서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다는데 전쟁으로 생긴 일이다. 

1952년 11월 돌이 지난 딸을 데리고 거제도 장승포에 피난을 갔다가 이화여대 시절 아는 분이 갈 곳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해 꼬불꼬불 언덕길을 올라가니 흙벽돌집에 짚으로 지붕을 올린 움막집 바닥 가마니에 갓난아기 일곱 명이 미군담요에 눕혀 있었다. 탯줄이 안 떨어진 아기, 부모가 죽거나 버려진 아기들이 악을 쓰며 울고 있었다. 이 아이들을 좀 돌봐 달라고 하기에 몇 시간이냐고 물으니 화를 내면서 당신 같은 사람이 이 아이를 돌보지 않으면 이 아이들은 죽는다고 하더니 나가버렸다. 밤새 울다가 지쳐 잠이든 아이들을 두고 떠날 수 없어 처음에는 하나님 이 아이들을 돌보라고 나를 대학까지 시켰느냐고 원망하는 기도를 했으나 아이들의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 감히 떠날 수 없어 ‘하나님 이 아이들과 함께 평생을 살겠으니 이 어린 생명을 지켜달라’고 기도를 바꾸었다. 이 약속과 기도 때문에 65년을 지금까지 아이들과 92세가 되도록 살고 있다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자신의 친딸 송우정(66)씨는 현재 애광원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으며 송씨는 어렸을 때 자신이 부산 영도다리 밑에서 버려진 아이라고 알고 애광원에서 고아들과 함께 자랐다고 했다. 어머니는 친딸에게 편애한다는 오해를 받을까 염려되어 일부러 딸에게 더 관심 없이 지내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친딸이라고 알려 주었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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