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권이 들어섰을때 방북을 한 일이 있다. 그 당시 나는 옷보내기 운동본부장으로 봉사했다. 헌 옷을 모아서 북한에 보내는 일이다. 그리고 또 한번의 방북은 식량지원단장 자격으로 시중은행 노조위원장들과 같이 갔다. 그 당시 방북과 관련해서 2가지 사건을 다루고자 한다. 첫째는 비자를 받기 위해 심양에 있는 북한 영사관 입구에서 본 섬뜩한 내용의 글 현판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임마뉴엘은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의 이름이다. 임마뉴엘은 3개의 단어가 합쳐진 히브리어이다. 임(함께)+마뉴(우리)+엘(하나님) 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 자리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가” 자리잡은 것이다. 임마뉴엘이 아니라 임마뉴김이 된 것이다. 실패로 끝난 공산주의는 기독교의 도둑맞은 페이지다. 김일성은 기독교 배경에서 자랐다. 물론 기독교인이었지만 변절했다. 외가나 친가 어른들이 모두 목사이거나 장로였다. 어머니 이름도 강반석이다.
위의 간판 구호는 김정일이 생존시까지 였다. 2011년 김정일이 죽은 다음에는 그가 추가되었다.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로 변경되었다. 김정일 이름이 추가된 것이다. 시내 요소요소에 이 현판이 걸려있다. 평양의 거대한 주체탑에도 쓰여있다. 이 주체탑은 170m로 세계 최고의 탑이라고 자랑한다. 워싱턴 모뉴먼트가 169.3m이다. 이보다 0.7m 더 높게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다. 세계 최고의 탑이라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탑에 우상화의 상징 최고의 허구가 새겨진 것이다.
역사를 보면 참 아이러니컬 하기도 하다. 국가에 최대 범죄자가 때로 강요된 존경의 정점에 있게 되는 경우들을 본다. 그런 나라가 정상적일 수 없다. 하나같이 망해가는 나라들이다. 나치가 그랬고 사담후세인, 카타피가 그랬다. 현재 북한도 그렇다. 방북해서 쇠락의 길을 가고 있는 참혹한 현장을 볼 수 있었다.
둘째는 은행 노조위원장들과 동행하며 여러 면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충격이었다.
심양에서 비자를 받고 단동으로 갔다. 단동에서 밤에 술자리가 마련되었다. 얼마나 먹고 마시고 했는지 한 명의 노조위원장은 필름이 완전히 끊겨버렸다. 인사불성이 된 것이다.
그다음날 아침에도 호텔에서 여러 사람이 떼메어 내려와 북한에서 보낸 차를 겨우 탔다. 압록강을 건너 신의주에 도착했는데, 이사람은 계속 인사불성이다.
겨우 여러 사람이 들어서 호텔방에 옮겼다. 그날밤 환영 만찬회에도 참석을 못했다. 북쪽 단장이라는 분이 내게 다가오더니, “단장선생님, 이런 일은 처음입네다” 라고 말했다. 모두가 긴장하고 오는데 이런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과 5일간 여행하면서 노조 간부들의 여러 실상을 볼 수 있었다. 우선 공항에 은행별로 몇십 명씩 떼를 지어 환송을 나왔다. 돈 씀씀이도 기업을 하는 나와도 달랐다. 대학에서 경제학사를 가르친 조기준 교수가 있었다. 노동자를 위해 시작되었던 노조가 강성해지면 변질된다. “노조 간부는 프롤레타리아 위에 군림하는 또 다른 부르주아이다” 라고 배웠다.
그 당시는 이해가 안되었다. 그러나 이들과 같이 며칠을 보내면서 현장에서 체험으로 깨닫게 된 진실이다. “노조 간부는 프롤레타리아 위에 군림하는 또 다른 부르주아 계급이다.” 이 말이 머리에 공명이 된다.
두상달 장로
• 국내1호 부부 강사
• 사)가정문화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