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지성] 북한 정권은 신앙의 자유를 허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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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에서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를 절대주의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는 왕권신수설이 지배적이었다. 이것은 국가의 주권은 군주가 신으로부터 받은 절대적인 것이므로 국민이나 의회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설이다. 따라서 국가의 주권이 군주에게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한 대표적인 군주는 프랑스의 루이 14세이다. 그는 “짐이 곧 국가다(L’Etat, c’est moi)”라고 까지 했다. 이것은 국가의 주권을 군주와 동일시한 개념으로 동양의 왕정체제에서도 군주권 행사가 절대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상은 영국의 청교도혁명이나 프랑스혁명을 통해 무너지고 국가의 주권을 주권재민(主權在民)으로 바꾸어 놓았지만, 아직까지도 지도자들이 국가의 권력을 장악하면, 민권은 안중에도 없고 국가 권력을 사유화해 집권자의 의지대로 국민을 끌고 가려는 경향성이 지배적이다. 

프러시아의 유명한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II)는 “나는 국가 제일의 공복(公僕)이다”란 말을 했다. 이것은 통치자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머슴이란 뜻이다.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이 통치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치자들이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런 지도자는 독재적 군주로서,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이 저항권을 발동해 주권재민의 국가로 바꾸어 놓아야 마땅할 것이다. 

북한은 국호를 민주와 공화국이란 칭호를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3대 세습을 넘어 4대 세습의 전주곡을 벌이고 있다. 북한은 왕의 절대권을 주장하다가 청교도혁명 때 처형당한 찰스 1세(Chales I), 그리고 프랑스혁명 때, 처형당한 루이16(Luois XVI)를 직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주권재민을 무시하고 주민 위에 군림하는 오늘날의 북한의 전 근대적 왕정체제 같은 독재체제는 스스로 비극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을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 주민은 지금은 순한 양과 같이 절대 군주가 하라는 대로 복종하지만, 강요된 복종은 시간이 흐를수록 저항문화로 바뀌어 갈 것이 자명하다.

북한은 변해야 산다. 북한은 진정 억울한 주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선정으로 바뀌어야 한다. 북한은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국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주민이 누려야 할 천부적 자유를 무슨 권리로 통제하고 박탈하고 있는가? 특히 인간의 천부적 자유 중에서 신앙의 자유는 인류 보편적 자유로서 국가 지도자 누구도 박탈할 수 없는 고귀한 자유다. 북한은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를 명시해 놓고 있지만, 실제로는 박탈하고 신앙인들, 특히 기독교인들을 무자비하게 박해하고 있다. 역천자(逆天者)는 망하고 순천자(順天者)는 흥하는 법이다. 로마제국에서 네로(Nero) 시대부터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303) 황제 시대까지 250여 년간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다. 박해하면 할수록 기독교 세력은 증가해 그들의 협조 없이는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갈 수 없게 되었다. 마침내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와 리키니우스(Licinius)는 밀라노칙령(Milano, 313)을 통해서 기독교를 공인하기에 이르렀다.

역사를 잊은 국가는 미래가 없다. 보이는 권력은 순간이고 진리는 영원하다. 로마를 호령하던 절대자 카이사르(Caesar)도 원로원에서 비수를 맞아 비참하게 사라졌고, 유럽을 휩쓸었던 나폴레옹도 과욕(過慾)을 부리다가 두 번째 유배지 세인트 헬레나(Saint Helena) 섬에서 사라졌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될 것이다. 만일 김정은이 신앙의 자유를 허락한 콘스탄티누스대제와 같은 용기를 단행하다면,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           

조인형 장로 

– 영세교회 원로

– 강원대 명예교수

–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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