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경남 마천산골 복음화에 충성 봉사한 지리산교회

Google+ LinkedIn Katalk +

경남 함양군은 행정구역 조직상 1읍 10개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함양은 인근 산청과 거창 함께 서부 경남지역으로 지리산 정기가 펄펄 흐르는 지역이다. 함양읍내에 있는 천년기념물 제154호는 상림공원으로 근래 최치원공원으로 부르고 있다. 신라말기 최치원 한문학자가 함양태수로 와서 함양읍내 홍수예방을 위해 위천수 냇물을 막아 쌓은 둑이 오늘날 역사 깊은 공원이 된 것이다. 조선조 김종직 정여창 박지원 등 역사인물 공원도 조성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유림세가 강한 함양에 기독교 복음화는 부진했다. 1930년대 함양교회가 한 면에 한 개의 교회 설립을 추진했으나 몇 개 교회에 그치고 함양군내에서 가장 오지 산골 마천면의 교회 설립은 가장 더디고 광복 후에도 한참만에 1967년경 마천교회가 설립되면서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고 이어 창원교회 의탄교회 지리산교회 삼정교회가 서서 마천의 복음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리산교회는 1985년 내가 자라던 도촌마을 ‘일명 섬말’에 서 있다. 천안 출신 김태근 목사가 1980년 창원교회 초대 전도사로 부임해 마천복음화에 충성 봉사하다가 목사 안수를 받고 도촌마을 우리 고모할머니 집터에 지리산교회를 개척한 것이다.

나는 마천에서 작은 마을의 하나인 나의 성장 마을 도촌 언덕에 교회를 세운 것이 은혜롭고 고마운 일이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내가 당시 시무하던 서울 강서구 소재 합신교단 화성교회 고 장경재(1918-2001) 목사님과 지리산교회를 심방하고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기로 했다. 지리산교회 근처에 부모님 산소가 있어 아우와 함께 고향에 가면 지리산교회를 자주 심방했다. 10여 명의 성도로 교회운영이 어렵다. 그래도 기도로 승리해 가며 한 40년 지리산교회를 잘 이끌어 왔다. 수원에 성경 주석의 대가 박윤선(1905-1988) 목사님이 세운 수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김태근 목사는 바른신학, 바른교회, 바른생활의 삼대교육이념을 잘 공부했다. 부인 조옥자 전도사도 합신 삼대교육이념 공부를 합신여자신학원에서 배운 것이다. 김태근 목사는 우리 화성교회 후원 속에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 1987년 황치교회를 설립했으며 이듬해 남원시 운봉읍에 황산교회를 개척했다. 한때는 지리산교회, 황치교회, 황산교회 세 교회를 돌아가며 시무했다. 황산교회 시무때 부흥회에 교인 동원차 갔던 집에서 새끼 꼬는 일을 돕다가 장갑낀 오른손이 기계에 말려들어 오른손 손가락 다섯 개가 다 잘려 나갔다. 나는 손가락 없는 오른손을 주님이 주신 은혜로 알고 불구의 손으로 열심히 전도하시라 했다. 내가 마천초등학교 다닐 때는 지게가 오가던 산길이었는데 지금은 지리산 등산로 입구가 되는 백무동계곡은 마천의 관광지의 하나로 냇물이 거울같이 흐르고 있다. 이 백무동 동네 사람들과 교회가 선 도촌마을 내 건너 강청 마을 그리고 덕전천 건너 덕전 뇌전마을까지 전도의 사명을 띠고 김태근 목사 부부는 땀을 철철 쏟았다. 그런 가운데 장남 이삭은 목사가 되어 서울에서 단독목회를 하고 있다. 열악한 재정 형편인데도 화성교회 루마니아 파송선교사 오헤림 선교사에게 선교비도 지원했다. 교회 주변 땅에 채소도 심고 때로는 양계 양돈으로 생계의 어려움을 타개해 나가기도 했다. 대외적 활동으로 남원시 군목협의회 회장, 부산소년원 종교지도위원, 아가페선교회 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지리산교회는 마천산골 미신지대 기독교 복음화에 힘쓴 그 피와 땀에 하나님 상급이 크리라 믿는다. 김태근 목사는 이제 원로목사로 물러나며 서울 한국중앙교회 시무한 이강원 목사에게 자리를 인계했다. 2019년 한글날 지리산교회 앞에는 짚신문학회가 세운 짚신문학창립20돌기념비가 튼튼히 서 있다. 마천을 빛내고 있다.

지리산 기슭 지리산교회의 마천산골 복음화와 큰 부흥과 발전을 기도한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