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없었던 시대는 한 번도 없었지만 오늘 한국교회는 성장 위기론을 넘어 본질 위기론에 직면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교회 신뢰도 추락, 신학교 난립과 목회자 질적 저하, 저출산과 학령인구 감소, 탈종교화와 세속화 등의 문제로 신학교육의 위기 현상도 가시화되고 있다. 미국의 신학자 에드워드 팔리(Edward Farley)가 예고한 대로 오늘의 신학교들은 불경기로 아주 심한 압박을 받고 있어 생존 문제에 직면하여 다른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을 정도이다.
‘위기’(危機)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을 흔히 우리 선조들은 ‘절체절명’(絶體絶命)이란 단어로 사용했다. 신체 일부를 잘라내고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어렵고 위태로운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과거 헬라인들도 이런 상황을 ‘아포리아’(α´πορία)란 단어를 사용했다. 빠져나갈 길이 없음, 막다른 골목, 미궁,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등의 뜻을 가진다. 헬라인들이 아포리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해답을 철학과 인문학에서 찾았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에서 찾았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합리성을 기본으로 한 당시에는 어리석음 자체였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의 복음에 온 생명을 걸었고, 묶임 가운데서도 그들은 찬양하고, 기도했다. 복음으로 가슴이 붉어진 사람들이 나아가는 곳에 교회는 세워지고 그 시대는 하늘 생명을 누렸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 제가 섬기는 장로회신학대학교 학생들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외치며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Re-vive, PUTS! 다시 복음이다!’
종교개혁 2세대로 개혁교회의 신학적 토대를 놓은 장 칼뱅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초로 한 교회 개혁해 가면서 지도자 양성을 위한 학교 설립을 추진한다. 1541년부터 긴 기도와 준비기간을 가진 후 1559년, 소의회 허락을 받아 제네바아카데미(Geneva Academy)가 시작된다. 젊은 신학자 데오도르 베자(Theodore Beza)가 학장을 맡았고, 첫 입학생은 162명이었다. 5년 후 300여 명이 되었고, 신학 공부를 위한 준비반(college)에 1천여 명의 학생이 공부하는 학교로 성장한다. 많은 설교자, 목회자, 학자를 양성하여 유럽 전역에 개혁신앙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감당한다. 학교 설립 후 칼뱅이 유럽 교회들에 보낸 편지가 전해져 온다. “당신들은 통나무를 보내주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불붙는 장작을 만들어 교회로 돌려 보내겠습니다.” 통나무와 같이 다듬어지지 않은 이들을 경건과 학문 훈련을 통해 복음으로 가슴이 불타는 사역자로 만들어 보내겠다는 의미였다.
학교가 시작된 지 5년 후 칼뱅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후계자였던 베자는 불붙은 장작으로 살았던 그를 향해 “지상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인도하던 가장 큰 빛이 하늘로 돌아갔다”고 기록한다. 불붙은 장작,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사람이 우뚝 서 있었을 때 교회는 새롭게 세워졌다. 오늘, 한국교회 영적 기상도는 어둡다. 하지만 “별의 바탕은 어둠”이라면서, “지금 어둠인 사람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고 소리쳐 주는 정진규 시인이 고맙다. 오늘 신학교육의 상황은 ‘아포리아’ 상황이다. 출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결국 복음이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라 티즈데일(Sara Teasdale)은 “나의 노래를 만드는 것은/ 나의 심장입니다”라고 노래한다. 복음으로 가슴이 불타고 있는 사람이 만드는 노래, 사역, 예배는 생명을 세운다는 외침이다. 복음으로 가슴이 불타는 사람, 불타오르는 장작과 같은 세우는 지도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육은 포기할 수 없는 사역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잘 준비된 일꾼들이 현장으로 달려나갈 때 세워지는 역사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는 지난 122년 동안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복음의 불을 지펴 민족과 교회를 세워왔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 이어가야 할 노래이기에 오늘도 우린 기도한다. 우리 가슴이 복음의 열정으로 불타오르게 하옵소서!
김운용 총장
<장로회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