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은 많은 유대교 학자들을 배출해냈다. 그중에 으뜸으로 손꼽히는 유대교 학자 중에 랍비 마이모니데스(Maimonides, 1135-1240)가 있다. 그의 유대인식 본명은 모세 벤 마이몬(Mose ben Maimon)으로, 이름의 히브리어 머리글자를 따서 람밤(Rambam)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2세기에 그가 이집트 카이로에서 성경과 미슈나 주석서들을 집필하며 학문 활동을 활발히 할 때, 그가 사용했던 히브리어 구약성경은 ‘알레포 사본’이었다. (‘알레포 사본’이라는 말은 후대에 지어진 것이지만 편의상 그렇게 부른다.) 시리아의 알레포로 옮겨지기 전까지 ‘알레포 사본’은 오랫동안 카이로에 있는 유대인 회당에 보관되었는데, 그때 마이모니데스가 그 사본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는 알레포 사본에 관해서 “가장 정확하고 믿을만한 사본”이라고 극찬했다. 그 후로 알레포 사본은 유대인 세계에서 최고의 권위 있는 구약 사본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15세기에 이 사본이 카이로로부터 알레포로 옮겨간 후, ‘알레포 사본’ 또는 ‘알레포의 왕관’(Keter of Aleppo, Keter는 왕관이라는 히브리어)이라고 불리며, 그곳의 유대인 회당 깊숙한 비밀의 방에 보존되어 내려왔다.
그러던 중 1947년 귀중한 알레포 사본이 유실되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큰 사건이 일어났다. 1947년 11월 29일 UN총회는 역사적인 팔레스타인 분할안을 가결했다. 19세기 말부터 시온주의(Zionism) 운동의 결과 해외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조상들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입해오는 유대인들이 늘어나자, 원주민 팔레스타인 아랍인들과 이주해온 유대인들 사이에는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UN은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팔레스타인 땅을 둘로 나누는 분할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팔레스타인 분할안이 통과되자 유대인들은 거리로 뛰어나와 춤을 추며 기뻐했다. 나라 없는 백성으로 세계에 흩어져 온갖 차별과 박해, ‘홀로코스트’까지 겪으며 살아온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 땅에서 독립국가를 이룰 수 있는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랍 세계는 일제히 반대하며 도처에서 ‘반(反)유대인’ 폭동이 일어났다. 폭동이 일어난 곳 중의 하나가 알레포였다. 시리아 북부 지역에 위치한 알레포는 4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고도(古都)로서, 상업과 경제의 중심도시이다. 이곳에는 상업에 종사하는 많은 유대인들이 유대교 회당을 중심으로 큰 공동체를 이루고 살고 있었다. 알레포에서 ‘반유대인’ 폭동을 일으킨 폭도들은 유대교 회당으로 몰려가 불을 질러 파괴시켰다. 알레포 사본을 보존하던 유대교 회당이 화마로 파괴되는 혼란의 와중에 알레포 사본은 유실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회당이 파괴될 때 소실되었다고 생각했다. 알레포 사본이 소실되었다는 소식에 유대인들은 슬퍼했고, 이 사본의 소중한 가치를 아는 전 세계 구약학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레포 사본이 화마에 소실된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 소문에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이스라엘 대통령 이츠하크 벤즈비(Yitzhak ben Zvi)였다. 그는 정치가였으나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성경학도였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