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에서는 장례를 통하여 그가 축복 받은 삶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어디에 묻혔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살아온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은 예루살렘 가기 직전 베냐민 지파 지역의 에브랏 근처에 매장되었습니다.(창 35:19) 반면 언니 레아는 비록 생전에 남편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조상들의 묘지에 함께 장사되었습니다.(창 49:30-31) 죽음을 앞둔 늙은 야곱도 자식들에게 유언합니다. 레아가 묻혀 있는 묘지에 함께 묻어 달라 합니다. 그녀들의 마지막 자리였던 묘지를 보고서 라헬이 애정과 미모와 현세적인 축복을 받았다면 레아는 좋은 품성과 영적인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에게 있어서 장례식은 중요합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장 마지막 절에도 요셉이 죽기 직전 자신의 장례에 대하여 부탁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장례가 중요한가요? 히브리 성서에서 ‘열조들에게 돌아가다’, ‘조상들과 함께 눕다’는 표현은 그들의 죽음을 통해서 선조들과 하나로 모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모이는 장소는 하나님이 선조들에게 약속한 땅에 위치한 무덤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독특한 문학적 표현은 단지 한 사람의 죽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조상들이 살던 땅에 현재 계속해서 살아가고 묻히는 후손들을 포함하는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정체성의 수단입니다. 이런 점에서 과거나 현재나 장례와 무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는 고독사가 사회적인 문제로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고독사와 관련된 문제가 얼마나 많은지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2020년에 제정, 시행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지방자치단체는 고독사 예방 및 지원 조례를 제정하여 소외·단절된 가구의 사회적 고립 및 고독사 예방을 위해 다양한 지원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독사’란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을 말합니다. 이것과 비슷한 것이 ‘무연고사’입니다. 시신을 인도할 사람이 없는 죽음을 말합니다. 일본에서는 자기가 죽고 나면 자기 시신, 자기 물건, 자기 장례를 위하여 돈을 미리 주고 맡기는 직종이 만들어지기도 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오래전부터 장례의 중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상을 당한 이들을 찾아가 위로하라는 성서의 말씀대로 장례에 임하는 섬김의 사역이 잘 훈련되어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교회가 고독사 위험에 노출된 이들을 돌아보는 일과 무연고사를 위한 장례를 정성껏 돕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섬김은 외로움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줄 수 있는 디아코니아의 중요한 사역이 될 것입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