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거 안되는게…. 이 집 아들 징집 대상자인데. 이 집에 어디 숨어 있는 거 아니야?” 군관은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창문밖에 대기중인 병사들을 부르고 있었다.
“어이! 이리 들어와 봐!” 허영숙과 춘원은 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있었다. “샅샅이 뒤져봐! 이 건물 집안 전체를… 아들놈이 어딘가 숨어 있을 거야.”
이렇게 명령해서 구석구석을 뒤지는 날에는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지금 아들 영근이는 며칠 전부터 지하실에 꽁꽁 숨어 있기 때문이다.
“춘원 선생! 우리 본부에 군량미 바닥났소. 저 구석에 쌓인 쌀, 3가마는 공출이오. 불만 있으믄 말하시오!”
군관은 언제 봤는지 저쪽 구석진 곳에 쌓여 있는 쌀가마니를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었다. 병사들은 잽싸게 쌀을 옮겨, 타고 온 트럭에 내다 실었다.
“불만 있을 수 있소? 어서 가져가시오.” 춘원이 군관의 비위를 맞춰 주고 있었다. 좀처럼 아부 같은 것은 못할 것 같은 춘원도 아들을 살리는 데는 못할 짓이 없는 모양이다.
이것이 이 세상 부모의 마음이다. “내 오늘도 그냥 가오마는 내일은 안되오. 내일은 우리와 같이 가야 하오. 이광수 동무! 알겠소?” 군관은 눈을 부라리며 겁을 잔뜩 주고 돌아갔다.
춘원과 허영숙은 이제야 숨죽이던 숨을 길게, 편안히 내 쉬었다. 이제 춘원은 꼼짝할 수 없는 것이, 춘원이 어디 도망가거나 더 버티면 이 집을 가택수색 할테고, 수색하면 아들은 잡히고. 그렇다고 영근이를 어디다 옮겨 놓을 수도 없고… 두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아무리 묘안을 짜도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허영숙은 남편 춘원보다 아들 영근이를 선택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내일 그 자들이 또 오면, 이젠 방법이 없어요. 당신이 그들을 따라 가세요!” 아내 허영숙은 남편의 등을 떠밀고 대신 아들 영근이를 선택하는 순간이다.
남편 춘원이 그 자들을 따라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그것이 어쩌면 마지막 길일 수도 있음을 허영숙은 모를리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들 영근이를 살릴 수 있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어제 그자들이 또 다시 찾아 왔다. 오늘은 안무혁 대좌와 또 한명의 사람이 함께 춘원을 데리러 왔다. 그 사람은 평양시당 문예부장 ‘리찬’이었다. 리찬은 북한 문예총위원장 한설야의 지시를 받고 오늘은 춘원을 직접 데리러 왔다고 했다.
북한 문예총위원장 한설야는 지난날 조선문단에서 춘원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온 소설가이다.
한설야는 리찬에게 춘원 선생을 정중히 모시고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리찬은 춘원을 보자마자 모자를 벗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춘원 선생! 인사 받으시라요. 저 문예부장 리찬입니다.” 리찬은 김일성 노래 가사를 쓴 북한의 혁명시인이다.
“한설야 위원장님이 오늘은 춘원 선생을 꼭 모시고 오라 했소. 오늘은 꼭 가야 합니다. 어서 갑시다. 안 대좌! 앞장 서시라요.” 리찬은 안무혁을 바라보며 출발을 명령했다.
오늘의 이런 날이 올 줄, 미리 짐작했는지 허영숙은 새벽부터 일어나 떠나는 춘원을 위해 아침 밥상을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어제 밤에는 두 사람, 오랜만에 살뜰한 대화를 나눴다. 먼 훗날 자식들을 위해 두 사람은 미리 준비한 합의 이혼 서류에 도장을 치고 손수 인장까지 눌렀다. 그리고 숙연한 분위기에 맥주잔을 들어 이별의 인사도 서로 교환했다. 춘원은 아내 허영숙을 깊이 포옹해 주며,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제대로 못해 준 것에 대한 사과도 처음으로 했다.
“여보! 무능한 나를 만나 그 동안 고생 참 많았소. 당신이 집안 가장 역할을 하면서, 아이들을 오늘 이만큼 잘 키워줘서 정말 고마웠소. 사랑하오!”
춘원은 아내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이렇게 싱겁게 했다. 허영숙이 살아오면서 그렇게도 듣고 싶어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춘원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사랑대신, 좋아한다는 말로 늘 대신 했었다.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