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보다도 작아서 배율이 좀 높은 돋보기가 아니고서는 입이나 더듬이를 알아볼 수가 없는 좁쌀개미. 모양새로는 딴딴해 보이는 각질로 마치 갑옷으로 온몸이 둘둘 싸여있는 로봇처럼 보이기도 한다. 생물학자들의 말로는 개미의 눈은 퇴화된 기관으로 흔적만 남아있을 뿐 더듬이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순호는 돋보기를 내려놓으면서 얕은 한숨과 함께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렇게 작은 것에도 방향감각이 있고 미각과 후각이 있어 단 것을 찾아 헤매니 참으로 신비한 생명의 세계가 아닌가.’
그런데 그 신비가 하루아침에 완전히 공포로 뒤바뀌고 만 것이다. 순호는 한달쯤 전 수소문 끝에 강원도 정선으로 일부러 찾아가 토종닭 수정란을 4백 개는 실히 넘게 구했다. 부화장에 단단히 당부를 했던 탓인지 거의가 실패없이 부화를 했다. 솜털로 몸을 휘감은 병아리들이 동그란 눈을 깜박거리며 삐약대는 꼴이란 참으로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이따금씩 병아리들이 방바닥이나 벽을 쪼아댔다. 그것은 기어가는 좁쌀개미를 잡기 위해서였다. 잡아먹으려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해서 부리로 건드려 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배합사료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그러리라는 단정을 넉넉히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순호에게 생각지 못했던 걱정이 생겼다. 처음에는 좁쌀개미 따위야 하고 전연 염두에 두지를 않았었지만 그래도 혹시 병아리들이 잠든 사이에 콧구멍으로라도 기어들어가 기도를 틀어막아 질식을 하게 한다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홍수처럼 밀어 닥쳐온 것이다. 우선 급한 대로 좁쌀개미의 출구와 숨을 만한 틈새를 찾아서 창호지로 모조리 발라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며칠이 못되어 뚫리고 그리고는 지켜 서 있는 병아리들에게 기어나오는 족족 사정없이 무참히도 물려 죽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한층 더 극성스럽게 좁쌀개미들이 몰려들었다.
어느 날 아침 연탄가스 냄새가 물씬 났다. 순호는 기겁을 했다. ‘이러다간 가스로 병아리들이 몰살할지도 모른다’ 순호는 황급히 넓고 질긴 마스킹테이프를 사서 돌아가며 구멍을 찾아내 틀어막았다.
그 후부터 좁쌀개미들은 종적을 감추었고 날이 갈수록 병아리들은 또랑또랑해졌다. 날개를 활짝 펼쳐보는 놈이 있는가 하면 서로 눈을 부라리고 대들어 싸우는 놈들도 있었다. 이제는 웬만큼 날씨가 풀어지면 밖에다 내놓아 길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순호는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가고 있었다.
그것은 며칠새 유난히도 아랫목쪽 벽지가 비에 젖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불러오고 있는 것이 신경을 건드렸고 네 마리의 병아리가 입으로 진액을 흘리며 까닭 모르게 죽어갔기 때문이다. ‘뭐 별 일이 있을라구.’ 그런데 어제 아침, 어찌된 까닭인지 사랑방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새벽부터 귀따갑게 닭소리가 들려와야 할텐데 전연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를 않았던 것이다. 순호는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사랑방 문앞으로 살그머니 다가갔다. 갑자기 미친사람처럼 활짝 문을 열어 제쳤다. “엇!” 순호는 비명을 질렀다.
연탄가스가 코를 찔렀고 아랫목 벽지가 칼로 벤듯이 위쪽으로부터 떨어져 제쳐져 있었다. 그리고는 방바닥에 그 많은 닭들이 꼼짝않고 쓰러져 있는 것이다.
순호는 으스레를 쳤다. 병아리마다 입가에 진액을 흘리고 있었고 여기에 그 진액을 빨아 먹으려고 좁쌀개미들이 마치 먹물이라도 뿌려 놓은 것처럼 온 방바닥에 얼룩져 있는 것이다.
‘도대체 생명이라는 게 무엇인가? 이 깨알보다도 작은 좁쌀개미들이 무엇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산다는 것, 생명이라는 것, 순호에게는 새삼 신비스러운 것이 아닐 수가 없었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