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과 상식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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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7. 17. 대한민국 헌법과 정부 조직법이 공포됐으니 2023년에 제75회 제헌절을 맞는다. 두 사람 이상이 같이 살려면 약속과 규칙이 있어야 질서가 유지된다. 국가의 최고법은 헌법이다. 그러나 법은 상식의 최하수준이요, 사랑은 상식의 최고수준이기에 사랑한다면 법을 다 지킨 것이다. 성경엔 십계명을 기초로 하여 613조의 율법이 있는데 ‘하라’는 勸法이 248조, ‘하지 말라’는 禁法이 365조로 돼있다.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교사죄(禁法)를 범했고(삼하 11:1-27) 어떤 부자는 나사로에 대해 勸法을 어겼다.(눅16:19-31)

레위기에는 5대 제사법이 구체적으로 제시돼있다. 고조선에는 ①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 ② 상해를 입힌자는 곡식으로 배상한다. ③ 도둑질한 자는 그 집의 노비(종)로 삼는다. ④ 소도(蘇塗)를 훼손한 자는 금고형에 처한다. ⑤ 예의를 잃은 자는 군에 복역시킨다. ⑥ 게으른 자는 부역에 동원시킨다. ⑦ 음란한 자는 태형으로 다스린다. ⑧ 남을 속인 자는 잘 타일러 방면한다는 ‘8조 금법’으로 국가를 운영했다. 

BC 1700년 대 바벨론에는 함무라비(Hammurabi) 법전(282조)이 있었는데 비석에 새겨졌고 동해보복(同害報復)의 원칙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엄벌주의 법이었다. 중재가 없으면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 내용은 절도죄, 군법, 농업과 가옥, 상법, 재무공탁, 친족, 배우자(이혼, 취첩, 근친상간), 상속, 양친, 유모, 존속폭행, 상해치사와 각종 직업까지 다루었다. 로마대법전은 유스티아누스 1세 때 라틴어로 저술된 것인데(AD.534) 법학제요, 학설휘찬, 칙법휘찬 및 신칙법집으로 구성돼있고 거의 현대법 체계와 유사한 정도였다. 그러나 법은 국가나 사회를 유지보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즉 만능일 수 없는 것이다. 회의 때 ‘법이오!’하고 주장하는 사람은 흔히 자기 확신에 빠진 경우가 많아 일의 처리나 건덕(建德)에 방해되는 경우가 많다. 법조문대로만 하려면 회의가 필요 없는 것이다. 사안별로 보이지 않는 사정이 있고 동기가 다르며 살펴볼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검토하고 의논하며 하나님의 공의에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또, 국가법이나 사회법이나 교회법 모두 해당자가 지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란 하소연이 있어 왔고, 어떤 법은 적용대상과 시기에 따라 유·무죄가 뒤바뀌고 있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耳懸鈴鼻懸鈴), ‘사슴가죽(鹿皮)에 가로왈(曰)자’란 비판이 있는 것이다. 당장 우리 교단에서도 교단 쇄신책으로 정했던 ‘목회 세습 금지’법이 한 교회의 위반으로 사문화되고 말았다. 

법과 정의는 함께 가고 모든 사람(교회)에게 평등하게 적용해야 되지만 해당자가 어겨버리니까 그 규정은 형해(形骸)만 남아버렸다. 스스로 내적 모순에 빠지고 보니 어느 교회, 어느 교인에게 치리가 되겠는가? 마음만 상하고 교회 위신만 추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노자 도덕경> 73장엔 “하늘이 미워하는 바의 까닭을 누가 알리오, 성인도 오히려 어렵게 된다. 하늘의 도는 다투지 않아도 이기며 말하지 않아도 성취된다. 하늘의 그 물은 크고도 커서 성긴 듯 하지만 해당자를 빠짐없이 잡아낸다(天網恢恢 疏而不失)”고 했다. 

행정과 정치가 세밀하게 살피면(察察) 그 백성들이 조마조마(鈌鈌)하며 바로 간다고 했다. 나라에는 국회의원들이, 교회에는 목회자와 장로들이 먼저 법을 준수하고 잘 지키자(마 7:15-27). 결국 사람은 무시해도 하나님까지는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마 22:37-40). 이 크리스천의 기본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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