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충이는 징그럽지만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산다”는 귀중한 교훈의 소재로 쓰인다. 사람에게 제 분수를 알라, 자기의 본분을 잊지 말라는 뜻을 일러주고자 할 때 우리는 송충이를 불러낸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리에 맞는 행동을 함으로써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기에 부모는 자식에게,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직업인들은 자기 활동영역의 관계자들에게 송충이를 들먹이며 본분으로부터의 일탈을 경고한다.
종로구 수송동 일본대사관 신축공사장 앞을 지나는데 어느 남자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울려온다. 공사현장 맞은 편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곁에 한 중년 남성이 서서 무언가 성명서를 읽고 있다. 몸에 긴 겉옷을 두르고 있어 가까이 가서 보니 천주교 사제의 복장이었고 등에는 십자가가 수놓아져 있다. 몇 마디 들리는 소리는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의 죄악을 규탄하면서 현 정부가 이에 관해 일본정부나 전범기업을 대신해 피해자와 유족에게 배상하려는 계획을 격한 언어로 비판하는 내용이다.
그곳에서는 30년 넘도록 여러 반일운동 시민단체들이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를 매주 수요일 계속해오는데, 천주교 신부가 수요일이 아닌 날 일제 강제노역(징용) 이슈에 관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특이했고,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것이 바로 송충이와 솔잎 교훈이었다. 시위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속하는 신부로 자신을 내세우고 있었는데 그의 행동이 어찌해서 천주교 신앙이나, 정의구현이라는 명분이나, 사제라는 신분과 연결될 수 있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근 50년전 박정희 대통령이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소위 유신독재체제를 선포했을 때 젊은 신부들이 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그룹을 구성해 종교인의 신분을 앞세워 저항운동에 나서자 많은 민주주의 신봉자들은 이들의 활동이 정의구현이라는 이념에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당시의 엄혹한 상황에 굴하지 않는 그들의 용기를 인정했다. 반세기라는 시간이 흘러가며 나라와 사회가 변화하여 세계가 인정하는 높은 수준의 정치적 자유와 물질적 풍요에 도달했음에도 이 신부들의 모임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변화한 현실에 눈감고 지극히 당파적인 정치적 주제에 스스로를 매몰시키고 있다. 그 결과는 근년에 그들이 들고나온 ‘이명박 퇴진’, ‘박근혜 하야’, ‘윤석열 타도’라는 구호로 드러나고 있다.
송충이가 솔잎을 거부하고 무슨 활엽수 잎사귀 따위를 먹겠다고 하면 살 수 있겠나? 복음전파를 통한 영혼구제의 사명은 교회의 다른 신부들께 맡기고 우리는 정치적 모순의 해결에만 매달리겠노라고 하며 이것이 진정한 정의라고 믿고 있다면 그들은 어찌해서 북한에서 지속되고 있는 최악의 인권상황이나 권력세습의 불의는 철저히 외면하는 것인지 아무런 변명조차 하려 들지 않는다. 가톨릭교회 지도자들의 설득노력도 무위에 그쳐 이제는 모두가 포기한 상태에 있고 평신도들의 지지도 미약하여 오직 극단적 진보세력 일부만이 이들을 용납 내지 이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일본대사관 앞 신부에게 사제의 복장은 매우 거추장스러워 보였다. 다음에는 차라리 빨간색 조끼를 걸치고 오기를 권한다. 그런데 빨간 조끼가 잘 맞는 사람들은 개신교계에도 있고, 학자들 중에도, 문화예술인 가운데에도 있다. 이분들이 제 본분을 떠나 거리에서, SNS 공간에서 정치적 구호를 외치면 우리 사회의 평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