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티와 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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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사님이 나이 많아 상처를 하였다. 사모님 없이 한 달을 홀로 살았다. 한 번은 믿을 만한 교인들 몇 명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 후 교인들이 근황에 대하여 질문을 하자 목사님은 솔직히 많이 외롭다고 실토를 하였다. 먼저 간 사람 생각에 자꾸 눈물이 난다고 하였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숙연해 졌다. 그런데 거기 모였던 한 사람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목사님을 먼저 보내고 남은 교인들에게 열을 올렸다. 목사님 평소의 설교 말씀과는 다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계신데 왜 외롭냐는 항변이었다. 

성경의 많은 위인들이 모두 인간적인 약함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다윗, 그리고 바울에 이르기까지 모두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으나 완벽한 인간이 아닌 허물 많고 연약한 사람들로 기록하고 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이 살기 위하여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장면은 이해할 수 없다. 가장 온유하다는 모세가 혈기를 내어 가나안에도 못 들어간 이야기와 그 용맹스런 엘리야가 여인의 복수를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은 말이 안 되는 장면이다. 다윗은 말할 것도 없고 바울의 로마서 7장의 고백들은 그의 사도됨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이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는 한계 속에 살아간다. 이는 목사나 장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는 육신적 약함과 인간적인 허물을 갖고 있다. 우리는 사람의 약함을 볼 때 기도할 의무는 있지만 비난할 자격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죄와 허물이 많고 약함 투성이지만 다른 사람의 기도와 격려 때문에 약함 속에서도 다시 회개하고 용기를 얻고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겠다. 주님께서는 남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신다. 내가 남을 비판할 때 그 비판이 부메랑이 되어 나도 남의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신다. 주님은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얼마나 교만한지 비판 받을 각오로 남을 비판하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것이다. 성경 말씀을 수백 번도 더 들으면서 살았건만 한 번도 우리 삶에 적용시키지 않아 계속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약함과 인간적인 허물이 비난과 고소의 출발이 아닌 기도와 사랑의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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